‘흰 비단 같은 유방이여/(중략) 당신 때문에 장미는 수치를 느끼네’
16세기 프랑스 시인 클레망 마로가 쓴 ‘유방 찬가’의 일부다.
여성의 유방은 고대로부터 숭배와 예술의 대상이었다.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고대의 조각상은 풍요를 기원하는 ‘신화’를 담고 있다. 이미 인체의 과학적 구조가 밝혀진 현대 사회에서도 유방을 둘러싼 ‘신화’는 여전하다. 과거의 신화는 신비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의 신화는 성적 의미를 주로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남자는 여자의 유방이 클수록 좋아한다’, ‘유방이 커야 모유가 많이 나온다’, ‘마른 여자는 유방도 빈약하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유방의 크기는 모유의 양과 큰 관련이 없으며 팔다리가 바싹 마른 여성도 유방이 클 수 있다. 또 모든 남자들이 큰 유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포유동물은 대부분 유방을 갖고 있다. 수유기에 유방은 팽창하고 수유기가 지나면 납작하게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여성의 유방은 수유기와 관계없이 항상 둥글고 풍만하며 우뚝 솟아있다.
한 인류학자는 여성의 유방을 종족 보존 본능을 자극하는 ‘속임수’라고 정의했다. 남성들이 여성의 유방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방은 모유를 분비하는 유선(乳腺)조직과 그 사이에 있는 지방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방이 작은 사람도 유선이 발달해 있으면 아이에게 충분한 양의 젖을 줄 수 있다. 유방의 크기보다는 유두의 모양이 모유 수유와 관련이 깊다. 유두가 유방 안으로 들어가 있는 함몰 유두의 경우 아이가 젖을 빨기 어렵다. 몸이 마른 여성이라도 유전적으로 유방이 클 수 있다. 한국 여성은 서양인과 달리 유선 조직이 많은 ‘치밀 유방’을 갖고 있다. 날씬한 연예인이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며 “자연산이에요”라고 말할 경우 색안경을 쓰고 볼 일만은 아니다.
여성의 유방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진화돼 왔다. 유방 정도의 무게라면 아래로 처져야 마땅하지만 처짐 방지 브래지어나 화장품 덕분에 늘 위로 솟아 있게 됐다.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의 저자인 샤오 춘레이는 이런 이유로 여성의 유방을 ‘문화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4300여 종의 포유동물 가운데 희귀한 예에 속한다는 것.
풍만하고 위로 솟은 유방이 아름답다는 사회적 관념 때문에 대부분 여성들이 자신의 유방에 결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예쁜 유방을 만들려고 속옷을 사거나 가슴운동을 하고, 유방확대 수술을 받는다.
유방확대 수술은 다양한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만 해도 중간 크기(브래지어 B컵 사이즈)를 선호했다. 성형외과에서도 보형물의 양을 한 쪽에 150∼160cc씩 넣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 큰 유방이 유행하면서 C컵 크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보형물의 양은 250cc로 늘었다.
수술 방법도 유방에 보형물을 직접 주사하다가 유해성 논란이 일자 실리콘 백에 내용물을 싸서 넣는 식으로 발전했다.
의료계에서는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술 방법은 지방 주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공보형물보다는 인체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배에 있는 지방을 빼서 가슴으로 옮긴다는 건 일석이조 같기도 하다.
지방 주입법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만 약점이 있다. 지방조직은 이식됐을 때 40%만 살아남기 때문에 여러 번 재수술을 해야 한다. 또 사람에 따라 지방조직 괴사 비율이 달라 원하는 크기로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현재 세포 재생 기능을 가진 줄기세포를 지방질과 함께 유방에 넣는 방법을 일본 등지에서 연구하고 있다. 지방조직이 유방 안에서 괴사하더라도 재생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근육을 유방에 옮겨 심는 경우도 있다. 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시술법이다.
유방은 새 생명을 키우는 젖줄이지만 자칫 잘못 관리하면 암세포의 둥지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움이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유방뿐만 아니라 건강한 유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글=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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