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눈, 입, 코 순서로 시선 흘러
실제로 ‘얼굴 공개’에 민감한 사람은 꽤 많다. 대부분 특수한 임무를 맡거나 범죄 용의선상에 놓인 인물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 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파문이 인 일이 있었다. 국정원 보안업무 관리 규정에 따르면 국정원의 경우 일부 직원을 제외하고는 인사이동이 있을 때에도 사진을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주요 인물의 경호를 맡은 경호원이나 전쟁지역에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은 선글라스나 복면으로 신분을 가린다.
얼굴 지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사람은 눈 입 코 모양을 보고 상대가 누구인지 인지한다고 말한다. 특히 눈은 얼굴의 매력을 판단하고 표정을 읽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얼굴의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눈 형태만 바꿔도 전혀 다른 얼굴로 인식하게 된다.
이 때문에 다른 얼굴 부위보다 눈을 가리면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다. 범죄자의 사진에서 눈을 가려 배포하는 이유도 이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비밀요원들이 선글라스를 쓰는 이유는 단지 멋이 아니다.
○ ‘부분’보다 ‘전체’로 판단
1997년 탈옥한 뒤 2년 6개월 동안 신출귀몰하며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신창원도 “가발과 모자로 신원을 숨겼다”고 훗날 경찰 조사에서 밝혔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의 인물사진도 거꾸로 보면 잘 알아보기 힘들다는 한 연구 결과는 전체적인 정보가 얼굴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얼굴의 크기를 바꿨을 때가 얼굴의 세부 부위를 일정 비율로 늘일 때보다 알아보기 힘들다는 결과도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김아중도 눈 코 입을 변형하지 않고 얼굴 크기를 바꾸는 방식을 활용했다. 따라서 선글라스보다 복면이 신원을 감추는 데 더 유리하다.
○ 선글라스맨, 선글라스는 바꿔야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하는 한남대 조용진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동공 간 거리는 65mm, 평균 코 길이는 67mm로 나온다. 이보다 많이 길거나 짧으면 ‘눈에 띄는 인상’으로 분류된다. 이마 길이나 얼굴 길이, 폭 등도 각각의 평균치가 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이 눈에 잘 띄는 이유 중 하나는 얼굴의 특정 부위가 평균치 이상이거나 이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기 사회자 신동엽 씨의 경우 그의 동공 간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보이기 때문에 오래 인상에 남는다.
조 교수는 “신원 노출이 금지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얼굴을 가져야 유리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잘생겼다’ 또는 ‘못생겼다’라고 느끼는 얼굴은 뇌에 강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선글라스맨’은 앞으로도 계속 자기 신원을 숨기고 활동할 수 있을까. 그가 쓰고 나온 선글라스는 그의 신원을 상당 부분 숨기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번에 언론에 등장했을 때와 똑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활동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 교수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의 세세한 부분보다는 선글라스를 쓴 전체적인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