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계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여러 가지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짝퉁’이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 가짜의 천적, 전기전자기술
가짜 판별에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과학 분야가 바로 전기전자기술이다.
최근 중국이나 인도, 남아메리카에서는 약효성분이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가짜 약이 유통되고 있다. 약에 테라헤르츠파를 쏘아 나오는 파형을 보면 가짜를 가려낼 수 있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테라헤르츠파의 주파수는 가시광선과 전파 사이인 1000억∼10조 Hz.
진짜 약과 가짜 약은 약 자체의 성분이나 겉을 둘러싼 코팅제가 다르다.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 기철식 선임연구원은 “테라헤르츠파가 통과할 때 성분마다 서로 다른 특정 주파수 영역을 흡수한다”며 “이를 분석해 진짜인지 판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는 테라헤르츠파의 주파수를 측정하는 분광장치가 이미 상용화돼 제약회사에 팔리고 있다.
환경분석 벤처기업 휴마스는 이달부터 가짜 휘발유를 적발하는 휴대용 시험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시험기는 한국화학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됐다.
가짜 휘발유에는 톨루엔이나 알코올 등 각종 첨가물이 섞여 있다. 시험기는 휘발유에 적외선을 쏘아 가짜를 구별한다. 첨가물이 섞인 휘발유와 정품 휘발유는 적외선이 투과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휴마스 김병렬 주임연구원은 “휘발유를 대량 구입하는 주유소나 가짜 휘발유를 단속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우선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을 실리콘이나 고무로 본떠 가짜 지문을 만들어 신분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전기전자기술로 가려낼 수 있다.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 김학일 교수는 “가짜 지문은 진짜 사람 손과 체온, 전기 특성, 산소량, 질감 등이 다르다”며 “이런 점을 이용해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는 센서가 이미 개발돼 있다”고 말했다.
○ 가짜 유기농-위작 판별은 생명공학으로
첨단 생명공학기술도 가짜 판가름에 한몫하고 있다.
국내 한 유기농 유통매장에서는 들여온 유기농산물을 판매하기 전에 정말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를 사용해 유기농법으로 키운 것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쓰는 방법은 질소 동위원소(질소14와 질소15) 판별법. 이를 개발한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노희명 교수는 “유기농산물에는 화학비료를 쓴 농산물보다 질소15가 더 많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공기 속 질소의 대부분은 질소14다. 질소14는 질소15보다 가벼워 화학반응이 더 잘 일어난다. 화학비료는 공기 속 질소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고, 퇴비는 오랫동안 화학반응을 거쳐 질소14가 많이 소모됐다. 따라서 질소14와 질소15의 비율을 측정하면 진짜 유기농산물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
생명공학기술을 응용하면 화가도 자신의 작품이 불법으로 복제 또는 위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감에 유전자 조각을 넣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4종류의 염기(A, T, G, C)로 이뤄져 있다. 물감에 넣은 유전자의 염기 수와 배열은 화가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나중에 그림에서 물감을 소량 긁어내 유기용매에 녹였을 때 화가가 알고 있는 염기서열 구성과 동일한 유전자 조각이 나오면 진품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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