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좋아지는 수면]‘사당오락’ 아직도 믿으세요?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2분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잘못된 수면 습관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올바른 수면 상식에 대해 알아보는 신홍범(수면검사센터장) 을지병원 정신과 교수의 ‘머리가 좋아지는 수면’ 칼럼을 격주로 연재한다.》

대학 다닐 때 기숙사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기숙사에는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많았다. 세계 수학·과학 올림피아드를 휩쓸거나 천재 소리를 듣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친구들 방에 놀러 가 보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기보다는 쉬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나보다 훨씬 빠른 듯했다. ‘저러면 공부는 언제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친구에게 “왜 그렇게 잠을 많이 자느냐”고 물었다. 그는 “충분히 자지 않으면 머리가 맑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만은 최고의 두뇌 효율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흐릿한 정신으로 8시간 동안 책상을 지키는 것보다 충분히 자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 1, 2시간 공부하는 것이 머리에 남는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비록 나는 그들처럼 천재는 될 수 없지만 천재의 요령은 배울 수 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창조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8시간 이상 잠을 자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퍼즐을 더 잘 푼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가 잠을 잘 때 뇌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자는 동안 뇌는 깨어 있을 때 얻은 정보를 정리한다. 필요한 정보는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린다. 또 필요한 정보를 적당한 장소에 저장한다.

예컨대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을 둘러보았다고 치자. 자는 동안 그 정보는 중고교 시절 배웠던 기하학 관련 지식이 저장되어 있는 곳 부근에 저장된다. 효율적인 기억을 위해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되고 중복되는 것이 있으면 삭제된다.

퍼즐을 푸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퍼즐 문제를 받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면 퍼즐 문제에 대한 고민은 적당한 기억 장소에 저장된다. 그 과정에서 관련 지식과 연결된다. 지식과 퍼즐 문제가 뇌 속에서 함께 만나 섞이는 과정에서 퍼즐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가지고 끙끙대다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후 불현듯 답이 생각난 적이 있을 것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밤새 고민했을 때보다 오히려 답이 쉽게 생각날 수 있다.

지식을 습득한 뒤 잠을 자면 새 지식이 우리 머릿속의 기존 지식과 만나면서 기억이 더욱 확실해진다. 기존 지식도 새 지식의 도움으로 좀 더 오래 머릿속에 남게 된다.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기를 원한다면 더 좋은 학원을 찾기보다는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해 주고 숙면을 방해하는 질환을 찾아 치료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신홍범 을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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