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병원’이 어디인지 헤맬 때가 많다. 동네 병원에 대한
정보 부재와 불신 때문에 대학병원은 넘쳐나는 환자들로 몸살을 앓는다.
동네 병원은 가벼운 질환의 환자를 돌보고 중병인 환자를 큰 병원으로 연결하는 ‘1, 2차 의료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보는 동네 병원들 가운데
좋다고 소문난 병원을 탐방하는 ‘소문난 병원’ 시리즈를 시작한다.》
1990년 어느 날, 서울대병원 일반외과 과장인 김진복 교수에게 제자 3명이 찾아왔다. 대장과 항문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3명이 공동 개업하기로 했다며 인사차 온 것이었다.
김 교수는 “외과는 개업하면 파리를 날려서 혼자 해도 벌이가 시원찮을 텐데 세 명이나 붙어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며 걱정을 해 주었다.
서울대병원 일반외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함께 수료한 강윤식, 이두한, 김도선 등 젊은 외과의사 3명은 1990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대장 항문 전문 서울외과 클리닉’(www.daehang.com)을 개원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대장 항문 전문’이란 간판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치질로 고생하던 사람들은 이 간판을 주목했다.
김 교수의 걱정과 달리 개원 초기부터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주로 치질 환자들이었다.
대학병원은 대기 시간이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고, 그렇다고 동네 병원에 가자니 믿음이 안 가 망설이던 사람들에게 ‘대장 항문 전문’이 파고든 것이었다.
치질은 수술해도 재발률이 높지만 ‘서울클리닉에서 수술하면 재발하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치질 전문 병원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1999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면서 병원 이름도 대장과 항문을 줄인 대항병원으로 바꿨다. 이후 서울 노원구 상계대항외과, 경기 수원시 수원대항병원, 서울 마포구 마포대항외과를 잇달아 개원하는 등 대장 항문 전문 병원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대항병원은 9월 현재 국내 최다인 12만여 건의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해 이 부문에서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가다
“블루오션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대항병원 이두한 원장은 고속 성장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처음 개원할 무렵 대장 항문 분야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극심했다. 의사들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대장 항문 분야를 전공하기 꺼렸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대학병원에도 대장 항문 전문의가 1명 있거나 아예 없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던 영역을 파고든 게 성공의 1차 요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원장은 환자들에게 신뢰를 심어 준 것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외과는 수술로 병을 고치기 때문에 외과 환자들은 대학병원을 찾게 됩니다. 개인 병원은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죠. 믿음을 주려면 우선 의사가 많아야 되고, 전문 분야를 한정해서 종합병원과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3명이 일반 외과가 아닌 ‘대장 항문 전문 클리닉’을 표방하고 개업을 했습니다.”
○‘재발 방지’ 레이저수술 거부 근본절제술 고집
대항병원이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을 제치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가장 많이 한 것은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발견되는 대장 용종은 대장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발견 즉시 절제해야 한다. 대항병원에서는 용종이 발견되면 바로 제거한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병원에서는 용종을 발견해도 바로 절제하지 않고 다시 검진일을 잡아서 용종을 절제한다.
환자로서는 한 번 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고, 기다리는 동안 ‘혹시 암은 아닐까’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왜 대학병원에서는 검사와 절제를 동시에 하지 않을까. 의료계에서는 보험수가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내시경 검사와 용종 제거를 동시에 하면 내시경 검사는 빼고 용종 제거에 대해서만 수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검사 따로, 용종 제거 따로 한다는 것.
차별화된 서비스는 대장내시경 검사 건수 증가로 이어지고, 의사들이 검사를 많이 해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선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대항병원은 치질 수술에서도 국내 1, 2위를 다툰다.
최근에는 레이저로 치질을 수술하는 방법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 병원에서는 의사가 메스로 직접 환부를 절제하는 재래식 수술법인 ‘근본절제술’만 고집한다.
이두한 원장은 “레이저 수술은 부위가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아 재발의 위험이 높지만 근본절제술은 질환의 근본을 제거해 재발률이 거의 없고 환자의 통증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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