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막내 연구원 한밤중에 ‘쇼’한 까닭은?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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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퇴근한 한밤의 텅 빈 연구실. 방 한쪽에 마련된 스튜디오 문을 슬며시 밀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살금살금 한쪽으로 가더니 조심스레 방안의 불을 켠다. 이윽고 콤팩트디스크(CD) 플레이어가 켜지고 귀에 익은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오빠는 심술쟁이야, 난 몰라 난 몰라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거 난 몰라.”

사내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탈을 쓰더니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얼쑤, 얼쑤” 하며 추임새까지 넣는다.

이 한밤의 불청객은 다름 아닌 우리 팀 소속의 막내둥이 연구원. 팀에서 그의 역할은 컴퓨터그래픽(CG)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생동감 넘치는 동작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평소 남들 앞에서 연기하기 멋쩍어 하던 그는 이날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밤중에 몰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원들이 이렇게 직접 연출과 연기를 하며 탄생시킨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는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애니메이션 코믹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한국화의 전통 채색기법을 이용해 독특한 영상미를 실현했다”며 극찬을 보냈다. 한국의 정서를 살리는 CG를 만들자며 연구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얻은 첫 성과였다.

물론 단박에 이런 결실을 본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다. 우리가 만든 기술을 처음 본 현장의 제작자들은 대부분 ‘활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하기엔 문제가 많다는 것.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혹독한 평가였다.

애니메이션 창작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우물 안 개구리’ 식 발상이 문제였다. 아무리 기술을 알아도 이공계 출신 연구원이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그렇다고 스스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장장 6개월에 걸친 뼈를 깎는 작업이 이어졌다. ‘창작’에 대한 이해와 발상의 전환도 필요했다. 그런 노력 끝에 얼마 후 수묵 담채화 느낌을 살린 애니메이션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밤새 무대에서 직접 연기하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 결과였다.

이번 수상도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여전히 모자라는 면도 없지 않다. 우리 정서에 맞는 CG를 만들기 위한 젊은 그래픽엔지니어들의 ‘쇼’는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구본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CG기반기술연구팀장bkkoo@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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