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야, 조금만 기다리렴 ‘유전자 성형’ 시켜줄게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적은 제초제로도 깨끗이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일반 잔디(위)와 깨끗한 유전자조작(GM) 잔디(아래). 제주대 연구팀이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넣어 만든 GM 잔디는 스스로 제초제 성분을 분해한다. 따라서 제초제를 조금만 뿌려도 잡초만 골라 죽일 수 있다. 제주=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적은 제초제로도 깨끗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일반 잔디(위)와 깨끗한 유전자조작(GM) 잔디(아래). 제주대 연구팀이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넣어 만든 GM 잔디는 스스로 제초제 성분을 분해한다. 따라서 제초제를 조금만 뿌려도 잡초만 골라 죽일 수 있다. 제주=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바이러스에 강한 GM 고추1개월 반 정도 키운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조작(GM) 고추(왼쪽)와 일반 고추. GM 고추는 바이러스에 잘 견디도록 면역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아 더 크게 자랐다. 사진 제공 서울여대
바이러스에 강한 GM 고추
1개월 반 정도 키운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조작(GM) 고추(왼쪽)와 일반 고추. GM 고추는 바이러스에 잘 견디도록 면역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아 더 크게 자랐다. 사진 제공 서울여대
유전자조작 제초제저항성 잔디 곧 국내 첫 산업화

제주대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산기슭. 약 1만 m²의 면적에 계단식으로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유심히 관찰하면 왼쪽 잔디밭에는 잡초가 많이 자라 있고 군데군데 맨땅이 보인다. 반면 오른쪽은 잡초 없이 깨끗하고 잔디가 고르게 나 있다. 오른쪽에는 유전자가 조작된 특별한 잔디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 잔디는 이르면 내년 말부터 공원이나 골프장 등에 깔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산 기술로 개발한 이 유전자조작(GM) 잔디는 국내 첫 산업화를 앞두고 있다.

○ 제초제 분해하는 유전자 삽입… 이달 중 농진청에 허가 신청

“올해 왼쪽 잔디밭에는 제초제를 무려 7번, 오른쪽에는 단 2번 뿌렸습니다. 오른쪽 잔디밭에 심은 잔디에는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들어 있어요. 이 유전자가 제초제 성분을 분해해 잔디가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하죠. 제초제는 잔디 주변의 잡초만 제거하게 되는 겁니다.”

1998년부터 제초제 저항성 잔디를 개발해 온 제주대 이효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 잔디를 농가에서 직접 재배해 판매할 수 있도록 이달 중 농촌진흥청에 산업화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다. 심사기간은 최소 270일.

국내 토종 잔디인 들잔디의 씨를 받아 실험용 접시에서 발아시키면 약 10일 뒤 세포 증식과 기관 형성이 일어나는 생장점이 생긴다. 연구팀은 생장점 주변에서 줄기세포를 떼어 영양분과 함께 다른 접시에 담아 배양했다. 그리고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갖고 있는 세균(아그로박테리아)을 잔디세포에 감염시켰다.

이 세균은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잔디세포에 밀어 넣는다. 그러면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가진 GM 잔디가 자라게 되는 것. 여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7∼8개월이다. 잔디가 접시에서 어느 정도 자라면 햇빛이 잘 드는 땅에 옮겨 심는다.

○ 7년간 10여 가지 생태계 영향 조사

GM 잔디가 산업화되려면 먼저 환경이나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환경단체에서 GM 기술에 대해 우려하는 점도 바로 이것. 이 교수팀은 7년에 걸쳐 GM 잔디가 생태계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10여 가지를 조사했다.

잔디를 뜯어 먹고 사는 대표적인 곤충은 바로 메뚜기. 메뚜기의 장 속에도 사람처럼 수십 종 이상의 미생물이 산다. 서울여대 류기현 교수는 일반 잔디와 GM 잔디를 먹은 메뚜기를 잡아 배를 가르고 장에서 미생물을 분리했다. 류 교수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추출해 비교분석한 결과 일반 잔디와 GM 잔디를 먹은 메뚜기 장의 미생물 분포에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잔디를 먹는 곤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주대 의대 이재천 교수는 일반 잔디와 GM 잔디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알레르겐)을 뽑아낸 다음 자원자 120명의 팔에 떨어뜨려 봤다. 사람들이 GM 잔디밭에 앉거나 누웠을 때 피부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3mm 이상 부풀어 오른 사람이 일반 잔디와 GM 잔디의 경우 9명씩 같은 비율로 나왔다”며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질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GM 잔디를 재배할 경우 주변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에 꽃가루가 날아가 교배가 이뤄지면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널리 퍼질 우려도 있다. 이효연 교수팀은 일반 잔디와 GM 잔디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 자연적으로 얼마나 교배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교배 확률은 0.2%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잔디와 꽃이 비슷하게 피는 유채나 보리와는 거의 교배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들 연구 결과를 올 초 ‘미국원예학회저널(JEQ)’에 제출해 두 달 전 게재 승인을 통보받았다. 산업화 허가 신청의 기본 자격요건을 갖춘 셈이다.

○ 일반 잔디 관리 비용의 10분의 1

제초제 저항성 GM 잔디를 산업화하는 목적은 결국 농가의 소득 증대다. 연구팀은 산소나 골프장, 축구장에 GM 잔디를 심거나 조경용으로 쓰면 일반 잔디보다 관리 비용이 10분의 1 이하로 절약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잡초 뽑는 데 드는 인건비나 제초제 사용이 줄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부가가치가 높은 토종 작물을 골라 GM 작물로 개발하는 건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제주=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GM(Genetically Modified) 작물:

생명공학기술(BT)을 이용해 원래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작물. 가뭄에 잘 견디거나 질병에 강하게 만들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재배하거나 섭취할 경우 환경이나 인체에 해가 없다는 점이 아직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

▼GM식용작물도 ‘결실 눈앞’▼

지금까지 국내 기술로 만든 유전자조작(GM) 작물이 산업화된 적은 없다. 제초제 저항성 잔디가 처음으로 산업화 심사를 받게 되는 셈. 이 결과에 따라 현재 개발 중인 다른 GM 작물의 산업화 허가 신청도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여대 류기현 교수팀은 농촌진흥청 바이오그린21사업 지원으로 농업생명공학회사 농우바이오 한지학 박사팀과 함께 바이러스 저항성 고추를 개발했다.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 유전자를 고추에 넣어 면역기능을 강화한 것. 사람이 병균이 들어 있는 백신을 맞으면 면역력이 강해져 실제 병균이 침입했을 때 잘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농촌진흥청은 제초제 저항성 벼와 고추, 해충 저항성 벼를 개발하고 있다. 재배할 때 제초제나 살충제를 덜 뿌려도 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병태 박사팀은 애기장대에서 질병뿐 아니라 가뭄이나 염분 같은 나쁜 환경에도 잘 견디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유 박사는 “이 유전자를 벼와 토마토, 고추에 넣어 GM 작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추나 벼, 토마토 등은 잔디와 달리 인체에 직접 들어오는 식용 작물이다.

소비자나 환경단체들은 GM 작물을 먹었을 때 사람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식용 GM 작물의 경우 산업화하기 전에 환경뿐 아니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반드시 함께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식용 GM 작물을 평가해 본 경험이 없다. 전문가들은 평가 과정이나 기준도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GM 작물 연구자들이 스스로 구체적인 평가 과정과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걸음마 단계라는 것.

GM 기술은 이제 과학자들 사이에서 보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대 이긍표 교수는 “이제는 GM 작물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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