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 인해 화가 쌓인다.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조직 생활에서 외톨이가 되기 쉽다. ‘화 다스리기(Anger Management)’는 원만한 사회생활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친구와 동업을 하기로 하고 큰돈을 건넸는데 글쎄 이 친구가 돈을 자신의 생활비로 탕진해 버린 거예요. 그 뒤로 가슴 속에 불덩이가 하나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열이 나고 답답해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화는 차오르는데 다스릴 방법은 없고.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을 찾은 장찬수(49·서울 송파구 송파동) 씨가 털어 놓은 사연이다.
집단 상담에는 장 씨 말고도 4, 5명의 화병 환자가 둘러앉아 자신의 증세를 얘기하고 있다. 사업가, 회사원, 주부 등 구성원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모두 화가 나면 통제하기 힘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김순복(가명·73·여·서울 강동구 명일동) 씨는 목석처럼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생긴 화를 다스리지 못해 병원까지 찾게 됐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 남편들을 보면 아내한테 다정하게 대해 주고 집안일도 잘 돕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다가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남편 얼굴을 보면 그때부터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남편한테 화를 내면 더 퉁명스러워질 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최근 화병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화병 상담 진료를 맡은 김종우 교수는 환자 조류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주부들이 화병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면 요즘은 입시 부담에 시달리는 학생, 과도한 업무에 지친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가 많이 화병에 시달린다.
특히 다른 사람 만날 일이 많은 영업·인사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화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상담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세는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
황경임(가명·50·여·경기 하남시) 씨는 영업부서에서 근무하는데 한 번 화가 솟구치면 “혈압이 오르는 것처럼 일순간에 왼쪽 뒷목이 뻣뻣해지는 두통이 온다”고 호소했다.
김 교수는 “목이나 가슴 한복판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고 두통, 어지럼증, 이명 증상이 나타나면 화병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신경질, 짜증, 쉽게 놀라는 증상까지 동반되면 화병일 가능성이 높다.
상담자들은 집단 상담 후 화를 다스리기 위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적절히 혼합한 치료법이었다. 전문가들은 약물치료와 침 뜸 등 한방요법도 좋지만 일반인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명상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명상은 분노로 인해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완해 준다.
장 씨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머릿속에 상상하면서 깊은 호흡을 하고 나면 마음도 가라앉고 가슴속에 있는 불덩이도 누그러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갑자기 명상에 돌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때는 머릿속에 좋아하는 과일을 떠올려 보는 ‘과일 명상’이 효과적이다.
과일 명상이란 가부좌 상태로 앉아서 머릿속에 사과나 포도 같은 새콤한 과일을 떠올리면서 입에 침이 고일 때까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일 명상을 하면 정신은 각성상태를 유지하면서 근육을 이완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해변 풍경이나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도 굳은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음악을 이용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각광받고 있다. ‘음악 명상’은 5, 6분 길이의 단조음악을 3곡 들은 뒤, 이어서 밝고 서정적인 음악을 3곡 감상하는 식으로 하루에 1, 2회 반복하면 좋다. 음악 명상은 자신의 억울함과 슬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격해졌던 감정을 정화하는 데 좋다.
차(茶)를 마시는 것도 화 다스리기에 도움이 된다. 화병을 가진 사람은 체질에 맞는 차를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태양인은 모과차, 감잎차, 오가피차가 좋으며 소양인에게는 구기자차, 당근즙, 녹즙이 잘 맞는다. 태음인은 들깨차, 율무차, 칡차가 좋으며 소음인은 계피차, 인삼차, 생강차, 꿀차, 쌍화차가 효과적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화병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아니다’까지 5개 구간으로 나누어 체크한다.)
[1]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혀 힘이 든다
[2]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어 힘이 든다
[3] 얼굴이나 가슴으로 열감이 느껴진다
[4] 목·명치에 뭉친 덩어리가 느껴져 힘이 든다
[5]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많이 든다
[6] 마음 속에 화가 쌓여 있거나 분노가 치민다
*최근 6개월간 ‘매우 그렇다’와 ‘자주 그렇다’가 4개 이상이면 화병일 가능성이 있어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자료: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허어∼ 쉬이∼
화를 풀어내는 한방호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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