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산맥(山脈) 체계에 반대해 2005년 국토연구원이 내놓은 ‘새 산맥지도’를 놓고 2년을 끌어온 ‘산맥 논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그간 논쟁의 핵심은 ‘기준을 땅 밑 지질로 삼느냐 아니면 땅 위 지형으로 삼느냐’는 산맥의 개념 문제였다.
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전국지리학대회 특별심포지엄에서는 ‘새 산맥지도’가 학문적 한계가 있으며 현행 교과서에서 제각각 사용되고 있는 산맥지도 역시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땅 밑에도 산이 있거늘…
○ 현대의 산맥지도로 보긴 어려워
이날 기조발제에서 서울대 지리학과 박수진 교수는 “새 산맥지도는 산의 연속성과 규모만 고려하고 있어 지질형성 과정 등 산의 지질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형 형성과정과 지질적 특성을 반영한 산맥 지도와 산지의 연속성을 반영한 산줄기 지도를 구분해 쓰자”고 제안했다.
‘새 산맥지도’가 발표되기 전 한국은 14개 산맥을 갖고 있는 산맥체계만을 사용해 왔다. 이 산맥체계는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처음 만들고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쳤다.
이런 가운데 2005년 국토연구원 김영표 박사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산지의 크기와 높이를 파악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토대로 ‘새 산맥지도’를 내놨다.
김 박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낭림·강남·적유령·묘향·차령·노령산맥 등 여러 산맥들이 실제 산맥이라고 보기 힘든 ‘유령 산맥’에 가깝다”고 말했다. 산 위의 지형이 낮은 언덕처럼 보이고 여기저기 끊긴 곳도 많아 도저히 산맥으로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새 산맥지도는 백두대간이라는 한국 전통의 개념을 잇는 48개의 크고 작은 산맥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주장은 언론을 통해 일제 식민 잔재 청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널리 공감을 얻었다.
○ 지형 형성의 역사 포함해야
지리학계는 줄곧 새 산맥지도가 온전한 산맥 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해 왔다. 산맥은 땅 위에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땅 밑의 지형 형성과 성장 과정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백산맥의 경우 약 2000만 년 동안 계속된 융기작용으로 생겼으며, 한때 유무 논란이 일었던 차령산맥은 중생대 화강암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산맥은 이런 지형 형성의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지형 형성 과정을 고려한 산맥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새 산맥지도와 달리 중간중간 하천이나 얕은 언덕, 심지어 바다에 끊긴 곳도 산맥으로 인정한다. 히말라야만 해도 곳곳에 강을 만나 끊어지지만 산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도원 서울대 교수는 “지금의 산맥체계가 비록 일제 식민 잔재라고 하나 과학적 방법을 활용했다면 과학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혼란 막으려면 산맥 표기 통일 먼저
문제는 현행 산맥 체계조차 서로 다르게 표기돼 있어 제2, 제3의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손일 부산대 교수는 “특히 현재 중고교 교과서와 지리부도에서 사용하는 산맥지도가 책마다 서로 달라 산맥에 대한 학계와 국민 간의 빠른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산맥도는 위치나 방향,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다.
산줄기 개념인 백두대간과 산맥 개념을 혼동하는 일부 주장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백두대간은 조선 후기 ‘산경표’라는 지리서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산의 외형적인 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 일각에서 현행 산맥을 백두대간 체계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지형 형성 과정을 고려한 현대적 개념의 ‘산맥’과 정의부터 다른 개념이라고 말한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