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등 기분장애 겪어
방치 땐 심장마비 위험
‘사고 전환’ 인지조절 치료
항우울제 복용도 도움
40대 후반의 A 씨는 두 달 전 아내에게 이끌려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남편이 변했어요.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물건도 집어던져요. 무서워서 같이 못 살겠어요.”(아내)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아내가 무시하는 기분이 들면 저도 모르게 폭발해요.”(A 씨)
의사는 A 씨가 감정조절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지조절 치료제와 항우울제 처방을 내렸다. A 씨는 두 달이 지난 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최근 화를 다스리지 못해 정신과 또는 스트레스 클리닉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산하는 증상을 ‘분노발작증’이라고 부른다.
별일 아닌데도 상습적으로 불같이 화를 낸다면 감정조절 장애가 의심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벌어진 상황에 대해 ‘자기만의’ 해석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령 아내가 술을 줄이라고 타박했다면 잔소리의 내용보다 ‘또 잔소리’라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가 일을 제대로 못 끝내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나중에 화 낸 이유를 물어보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억을 하더라도 “화 낼 일은 아니었는데”라며 계면쩍게 말한다.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이 터지면 또 화를 낸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는 환자를 진단해 보면 대부분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기분장애를 갖고 있다”며 “자신이 상습적으로 화를 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 동료 등 주변에서 치료를 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공격적 성격, 심장마비 위험 3배
심장마비는 화를 낸 직후, 내고 있는 중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2배 높다. 화를 많이 내고 공격적인 성격일수록 심장마비 발생률이 3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 미니애폴리스대의 연구팀이 18∼30세 성인 3579명을 대상으로 심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카로테노이드’라는 물질의 수치를 성격별로 조사한 결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일수록 카로테노이드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를 내면 가장 먼저 교감신경계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면서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이를 의학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부른다. 이 반응을 통해 몸은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러나 스트레스 반응이 자주 나타나면 심장에 연결된 동맥의 직경이 줄어들면서 노폐물이 쌓인 혈관 부분이 터지기도 한다. 심장마비로 연결되는 것이다.
○ 심호흡-소리 지르기 등 이완반응 도움
화가 나면 바로 푸는 것이 가장 좋다. 우선 조용한 곳에 가서 심호흡을 한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베개를 침대에 내려치거나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소리를 질러도 좋다. 이렇게 하면 심장박동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고 신체는 안정된다. 이를 ‘이완 반응’이라고 한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이완 반응이 더 잘 나타나므로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최근에는 ‘인지조절 치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치료는 사고체계를 전환함으로써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싸워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한발 물러서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직장 상사가 화를 내면 ‘왜 매일 나한테만 화를 내는 거야’ ‘나만 무시해’라고 생각하며 화를 내지 말고 ‘내가 화내면 내 손해지’ ‘내 업무 스타일에 문제가 있으니 화를 내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가 잔소리를 할 때에도 ‘내 몸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겠지’라며 웃어넘겨야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화를 잘 낸다면 항우울제 복용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때는 의사와 상담을 한 뒤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면역력 높여주는 ‘웃음 명약’
“박장대소 한번이면 고가 영양제 울고가요”
강직성 척추염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던 의사 노먼 커즌스는 웃음이 통증을 날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웃음 치료를 도입했다. 패치 애덤스는 어릿광대로 변신해 어린이 환자의 웃음을 유발했다.
과로, 술, 담배, 스트레스, 활동 부족 등 우리 생활 주변에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는 많다. 반면 휴식, 좋은 공기, 운동, 일광욕 등 면역력을 키워 주는 요소는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웃음 요법’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면역 강화 요법이다.
1시간 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었다면 몸속에서 암이나 세균성 질환에 대항하는 ‘NK세포(자연살해세포)’의 기능이 크게 활성화된다. 엔도르핀 등 몸에 좋은 호르몬은 많이 분비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은 줄어든다.
웃어야 할 상황인지는 뇌 전두엽(이마엽)의 신피질계에서 판단한다. 따라서 전두엽이 손상되면 감정이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이 된다. 뇌를 심하게 다칠 경우 웃음이 없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웃음을 조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웃을 일이 아닌데도 웃는다. 이런 웃음을 의학적으로 ‘병적 웃음’이라고 부른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맘껏 웃고 난 뒤에는 호흡량이 늘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적대감과 분노의 감정은 줄어든다. 게다가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 주변에도 쉽게 전파된다. 잘 웃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태우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파안대소, 박장대소, 포복절도, 요절복통 순으로 웃음의 등급이 올라간다”면서 “건강에 도움이 되려면 최소한 박장대소 이상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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