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갈리는 의학상식 두고 의사끼리 논란

  • 입력 2008년 1월 14일 14시 01분


코멘트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의 ‘의사도 속고 있는 의학상식’ 기사가 의사 사이에 논란을 낳고 있다.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의 ‘의사도 속고 있는 의학상식’ 기사가 의사 사이에 논란을 낳고 있다.
“병원에서 휴대전화를 써도 괜찮다”는 캐럴 교수의 주장에 가장 많은 반박 댓글이 달렸다. 사진은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최첨단 수술실.
“병원에서 휴대전화를 써도 괜찮다”는 캐럴 교수의 주장에 가장 많은 반박 댓글이 달렸다. 사진은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최첨단 수술실.
“의사도 속고 있다” 주장에 “속지 않았다” 반박

의학상식 중에는 의사도 헛갈리는 것이 많다. 최근 미국 연구팀이 지적한 7가지 의학상식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12월 22일 ‘의사도 속고 있는 의학상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실렸다. 필자였던 미국 인디아나대 아동보건연구소의 라첼 브리맨 연구원과 애런 캐럴 교수는 “‘하루 8잔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한다’ ‘병원에서 휴대전화 쓰면 위험하다’ 등 7가지 의학상식이 근거가 없거나 잘못됐다”라고 주장했다. ‘의사도 속고 있는’이라는 흥미로운 제목 때문인지 이 기사는 국내 여러 일간지에 소개됐다.

하지만 기사가 서비스된 뒤 ‘영국의학저널’ 홈페이지에는 캐럴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캐럴 교수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취약하다는 지적이었다. 국내에서는 강석훈 대한의학회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가정의학과 전문의)이 캐럴 교수가 주장한 내용의 상당 부분에 오류가 있다며 조목조목 지적했다.

캐럴 교수는 “1945년 미국 영양위원회가 권고한 ‘인간은 하루 8잔 분량의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 ‘하루 8잔의 물을 마셔야 한다’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음식에 들어있는 수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평소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한두 잔의 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위원은 “몸에서 빠져나간 만큼 섭취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교수의 계산이 틀렸다”고 반박했다. 영양학 전문서적인 ‘크라우즈 11판’(Krause's 11th)에 따르면 정상기후에서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하루 동안 성인의 몸에서 약 2.3L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런데 하루 동안 섭취하는 음식에 0.7L의 수분이 있고, 음식이 산화되면서 0.2L의 수분이 생기므로 나머지 1.4L(종이컵으로 7잔)는 직접 물이나 음료수를 마셔 보충해야 한다.

또 캐럴 교수는 “‘병원에서 휴대전화를 쓰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휴대전화가 의료장비와 1m 이내에 있을 때 발생한 오작동을 월스트리트저널이 대대적으로 보도해 이 같은 오해가 생겼다”며 “이로 말미암아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또 “직접 75개 진료소에서 300번 시험한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에 가장 많은 반박 댓글이 달렸다. 휴대전화가 의료장비에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보고서가 이미 많다는 것. 특히 강 위원은 “제한된 진료소에서 행한 300번의 실험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라며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생명을 담보로 휴대전화를 쓰고 싶은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상식도 논란을 낳았다. 캐럴 교수는 “18세기 초 자기개발 전문 강사들이 지어낸 말”이라며 “수많은 뇌 영상촬영을 통해 관찰한 결과 뇌에는 비활동 영역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은 “저자가 뇌에 비활동 영역이 없다고 주장한 근거는 뇌의 특정 부위에 혈류가 변하는 정도를 촬영한 영상”이라며 “‘혈류 증가가 곧 뇌의 활동’이라는 전제를 입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외에도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고 보고한 연구 결과가 단 한 편도 없다’ ‘면도하면 털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는 착시 현상이다’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 졸린 이유는 추수감사절에 워낙 많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캐럴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강 위원은 모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연구 결과가 없다고 해서 눈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면도가 털의 길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굵기에 대해서는 피부과 의사들도 의견이 반반 엇갈린다는 것. 또 “음식을 많이 먹으면 졸린 것은 사실이나 졸음은 주로 항불안제의 유무와 관련이 있다”며 “칠면조 고기와 다른 고기의 항불안제 함량을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내용 중 유일하게 ‘머리털과 손톱은 사망한 뒤에도 자란다고 느끼는 것은 착시현상’이라는 주장에는 반대 의견이 없었다. 캐럴 교수는 “피부가 수축해 생존보다 얼굴과 손발이 작아지므로 상대적으로 머리털과 손톱이 자란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캐럴 교수가 ‘의사도 속고 있다’고 주장하자 의사들이 ‘우리는 속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형국이다. ‘영국의학저널’ 홈페이지(http://www.bmj.com/cgi/content/full/335/7633/1288)에서 원문과 댓글을 볼 수 있다.

김정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navi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