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최지는 서울 서울 서울… ‘과학 KOREA’ 뜬다

  • 입력 2008년 1월 14일 20시 20분


"다음 개최지는… 서울입니다!"

2004년 4월 영국 런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세계철도연맹을 대표하는 조직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2008년 5월 제8차 세계철도학술대회(WCRR) 개최지를 서울로 정했다. 이 행사는 국제 철도계의 최대 학술행사로 '철도 올림픽'으로 불린다.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학회의 국내 개최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개최가 확정된 학회만 약 20개에 이른다. 국제 과학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성과다.

●경쟁국 제치고 국내 개최 확정

한국이 WCRR 개최 의사를 처음 나타낸 건 2001년 독일에서 열린 제5차 학회. 그러나 프랑스와 인도라는 강력한 경쟁국 때문에 개최가 쉽지 않아 보였다. 프랑스는 TGV로 일찌감치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인도는 아시아와 유럽 철도망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다.

전략이 필요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오일근 박사와 강용묵 주임을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 유치단은 매년 2번씩 열리는 WCRR 조직위원회 회의에 매번 참석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죠. 환영은 고사하고 저들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한국 기술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당연했죠."(강 주임)

유치단은 조직위원들과 인맥을 쌓으며 모든 위원에게 일일이 한국의 철도기술을 설명했다. 2004년 때마침 개통된 KTX도 우리 기술을 알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과학자들이 직접 발로 뛴 노력이 결국 한국 개최 만장일치 찬성이란 성과로 이어진 것. 국내 철도 전문가들은 이번 학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국제 과학계에서 한국 철도기술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외교, 기술홍보 등 다양한 효과

세계 과학계의 국제학회 유치 경쟁은 비즈니스 못지않게 치열하다. 개최국은 연구 성과를 다른 참가국보다 많이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명한 외국 연구소에 우리 학자를 파견하거나 국제 공동연구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 국제학회가 '과학외교'의 발판이 되는 셈.

4월 열리는 세계작물학대회 조직위원장인 서울대 이호진 교수는 "2000년부터 세계작물학회에 30여 명의 유치단을 파견해 상임이사들을 '맨투맨'으로 설득하고 우리 기술을 설명한 영문책자까지 만들어 보냈다"며 "이런 적극성과 준비 덕분에 100여 명의 유치단을 파견한 일본과 중국을 제쳤다"고 말했다.

국제학회는 관련 분야 기술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통로도 된다. 기업이 과학자들의 국제학회 유치 지원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6월 열리는 국제액정학회는 비용 대부분을 LG화학과 머크, 니산화학, 치소코리아, 동우화인캠 등 액정 및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의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2006년 4월 프랑스와 독일을 따돌리고 유치에 성공한 것은 한국의 디스플레이산업과 젊은 인재들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국제액정학회 조직위원장인 서울대 이신두 교수는 "학회에 참여하는 외국 과학자들의 국내 산업체 견학 일정도 계획하고 있다"며 "기업의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학회는 국내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10월 한국 개최가 확정된 세계여성물리대회에는 70여개 나라를 대표하는 저명한 여성물리학자들이 참가한다.

세계여성물리대회 조직위원장인 명지대 박영아 교수는 "물리학계에 여성이 드문데 중고교에서 여학생이 물리를 배울 기회마저 줄어들고 있다"며 "이번 학회를 여학생들이 물리학 분야로 진출하도록 이끄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학회 개최하는 이유

국제학회를 유치하려는 과학자들은 사업가 못지않은 인맥과 화술을 갖춰야 한다. 개최지 결정권이 있는 세계적 학자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한국 과학의 장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학회의 조직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연사를 섭외하고 논문을 선정하는 등 준비과정을 돕기도 한다. 물론 수고료 한 푼 못 받는 무료봉사다.

연구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과학자들이 국제학회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까닭은 자기 분야에서 최신 연구정보를 쉽게 얻고 한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10월 열릴 국제핵연료학술대회 유치에 참여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이정원 박사는 "한국의 핵연료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알릴 좋은 기회"라며 "핵 연구는 특히 비용이 많이 들고 국가 간 정보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이 학회를 개최할 자격을 갖춘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뿐이다.

국제 과학계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연구비를 확보하고 연구기반을 다지는데 유리하다.

5월 열리는 세계동위원소대회 조직위원장인 서울대 이명철 교수는 "원자력 기술은 한국이 발전 분야에서 세계 5, 6위지만 농업과 화학, 공업, 식품 등 비발전 분야에선 25~30위로 크게 차이가 난다"며 "학회 유치가 확정된 뒤 정부는 5%인 원자력 비발전 분야 투자를 2010년까지 3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국제학회의 유치위원장이나 조직위원장은 주로 해당 분야의 실력자나 원로 과학자가 맡는다. 이들은 국내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뿐 아니라 개인적 명예도 얻는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기자soh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