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돌다 병 키운다

  • 입력 2008년 2월 20일 03시 03분


만성질환 노인들 이 병원 기웃 저 병원 기웃…

《고혈압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최모(76) 할머니는 병이 잘 낫지 않는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무려 11개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568일치의 약을 처방받았다. 자신이 먹는 약의 세 배가 넘는 분량을 처방받은 것이다. 방문 병원은 처음 동네 의원에서 출발해 점점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대학병원을 다녔다. 병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녔지만 진찰 결과 차도는 별로 없었다.》

만성질환 환자들이 병원을 자주 옮겨 다니는 바람에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노인환자의 1차 의료서비스 이용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만성질환 환자 가운데 5곳 이상 의료기관을 옮겨 다닌 사람은 1, 2곳을 꾸준히 다닌 환자에 비해 입원 위험은 최고 1.88배, 응급실 방문 위험은 최고 2.11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2∼2005년 당뇨, 고혈압, 천식,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 4개 만성질환을 앓는 65∼84세 환자 138만8000명의 의료기관 이용 실태를 추적 조사한 것이다.

천식의 경우 5곳 이상 병원을 옮겨 다닌 환자는 병원 1, 2곳을 지정해 놓고 다닌 환자에 비해 입원 위험이 1.88배, 응급실 방문 위험이 2.11배 높았다.

5곳 이상 병원을 옮겨 다닌 당뇨 환자는 1, 2곳을 다닌 환자보다 입원 위험이 1.46배, 응급실 방문 위험이 1.40배 높았다. 5곳 이상 옮겨 다닌 고혈압 환자는 입원과 응급실 방문 위험이 각각 1.31배, 1.44배 높았다.

질병별로 봤을 때 5곳 이상 병원을 옮겨 다니는 환자의 비율은 당뇨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뇨 환자는 100명 중 11명 이상이 3년 동안 5곳 이상 병원을 옮겨 다녔다. 고혈압과 천식의 경우 5곳 이상 병원을 옮긴 환자의 비율이 각각 7.4%와 6.7%에 달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자는 100명 중 3명이 5곳 이상 병원을 옮겼다.

환자들이 병원을 옮기는 이유는 합병증 치료가 가장 크지만 치료에 대한 불만족과 의사에 대한 불신 등 심리적인 원인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의료급여 장기 이용 환자의 의료 이용 실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2867명 가운데 28.2%에 해당하는 809명이 치료에 대한 불만족과 의사에 대한 불신을 병원을 바꾸는 이유로 들었다.

홍재석 심평원 연구원은 “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 과거 병력, 질병 악화 가능성 등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려면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팀 이현주 서기관은 “무조건 큰 대학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보다는 동네 의원급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는 것이 건강관리에 더 유리하다”며 “지난해 7월부터 실시한 선택병의원제(저소득층 환자가 한 병원을 선택해 꾸준히 다니면 무료로 진료)가 효과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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