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사이언스]영리한 기생충, 숙주를 먹잇감으로 내몰다

  • 입력 2008년 2월 26일 14시 58분


‘레드베리’라는 열매와 빨간 배를 가진 개미. 구분하기 힘들만큼 크기와 색이 흡사하다.
‘레드베리’라는 열매와 빨간 배를 가진 개미. 구분하기 힘들만큼 크기와 색이 흡사하다.
정상적인 일개미(위)와 기생충에 감염된 일개미(아래). 기생충에 감염되면 개미의 배 색깔이 바뀐다. 사진제공 :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상적인 일개미(위)와 기생충에 감염된 일개미(아래). 기생충에 감염되면 개미의 배 색깔이 바뀐다. 사진제공 :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개미 몸 안의 기생충이 더 큰 숙주로 옮겨 살기 위해 개미의 배 색깔을 바꾼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개미의 배 색깔이 빨갛게 바뀌면 새들이 개미를 ‘레드베리’라는 열매로 착각해 잡아먹는다. 기생충은 이렇게 자신의 숙주를 제물 삼아 새의 몸 속에 옮겨 살 수 있다. 또 새의 배설물을 통해 광범위하게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통합생물학과 로버트 더들리 교수팀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학술지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에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2005년 파나마의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세팔로테스(Cephalotes)라는 개미의 서식 환경을 조사하다 배 색깔이 빨간 개체들을 발견했다. 그 중 일부를 채집해 배 속을 갈라본 결과 수백 개의 기생충 알이 관찰됐다. 이에 연구팀은 몸 전체가 검은 빛을 띠는 세팔로테스의 일부에서 배 색깔이 빨간 색으로 변하는 이유가 기생충과 관련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후 연구팀은 2년 동안의 연구 끝에 기생충이 새에서 개미로, 개미에서 다시 새로 옮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충 개미가 새끼 개미에게 새의 배설물을 먹이는 과정에서 몸 속으로 기생충이 들어가게 된다. 새끼 개미가 자라 어른 개미가 되면 기생충은 개미의 배 색깔을 빨갛게 바꾼다.

더들리 박사는 “나무에 주로 붙어사는 개미의 배가 빨갛게 바뀌면 ‘레드베리’라는 열매와 비교했을 때 크기나 색깔에서 구분이 힘들만큼 비슷해진다”며 “평소 개미를 전혀 먹지 않는 바나나퀴트, 임금딱새 같은 새들이 개미를 레드베리인 줄 착각하고 잡아먹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yps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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