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번 돈 모두 합치면 한 해 1조원쯤 되던 걸요”

  • 입력 2008년 3월 14일 03시 00분


‘기술벤처 대부’ 권욱현 서울대 교수

“자랑 하나 할까요? 저는 한 해에 1조 원을 법니다.”

13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권욱현(65·사진)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제 연구실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가 세운 벤처기업이 모두 12개예요. 그중엔 변대규 사장이 창업한 휴맥스도 있습니다. 매출액을 전부 합하니까 1조 원쯤 되더군요. 제가 키운 제자들이 번 돈이니 이런 얘기를 해도 크게 흉잡히지는 않겠지요?”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서 옅은 장난기가 묻어난다.

지난달 29일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그에게는 ‘기술 벤처의 스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대학에 들어와 권 교수 연구실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77명. 이 가운데 벤처기업을 창업한 제자가 35명이나 된다. 이들은 1990년대 한국 벤처기업의 태동기를 이끈 역군이다.

하지만 권 교수의 이력만을 놓고 보면 그는 영락없는 정통파 학자다. 국제자동제어연맹 회장에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도 받았다.

이런 그가 기업가의 ‘대부’가 된 이유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충격 때문이었다.

“1981년 안식년을 보내러 미국 스탠퍼드대에 갔습니다. 학생들이 창업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사례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미국 경제의 원동력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는 이듬해 한국에 돌아와 “연구실에 있다고 해서 사회와 단절될 이유는 없다”고 수시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창업에 관해 누릴 수 있는 보람과 어려움도 자주 얘기했다.

“창업이 공학도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사회로 나간 제자들의 면면은 쟁쟁하다.

국내 대표 벤처기업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이 1989년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창업했다. 로봇제어기업 우리기술, 첨단통신기업 파인디지털, 의료장비기업 바텍 등의 창업자들이 권 교수 연구실 출신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코스닥에 상장됐다.

이처럼 많은 졸업생이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만든 독특한 ‘연구실 벤처 제도’ 덕분이었다.

연구실 안에 작은 벤처를 여러 개 설립한 권 교수는 학생들을 팀으로 나눠 팀장이 프로젝트와 인력 관리를 맡도록 했다. 과제를 해결할 아이디어와 노력을 결집해 기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익히도록 한 것이다.

팀장에게는 연구비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줘 강한 책임감을 갖도록 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팀장이 졸업해 창업을 하면 호흡을 맞춰 오던 팀원들이 순차적으로 따라 나섰다. 험난한 벤처 시장에서 뛰어난 인력과 팀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명약이 됐다.

앞으로 그는 연말까지 자서전을 쓸 계획이다.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다. 영문 교과서도 2, 3개 쓰려고 한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소임을 마쳤지만 이공계 기피와 같은 최근 문제에 도움이 될 만한 방법들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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