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좌파적 성향 강해 佛에 가까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까지 감수하며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도왔다. 후임 고든 브라운 총리도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양국은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한껏 치켜세웠다.
과연 양국 정상이 ‘특별한 동맹’ 관계를 자랑하며 우정을 과시해 온 것처럼 양국 국민의 가치관도 유사한 것일까.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영국인과 미국인 각각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항목의 가치관 성향을 조사한 결과 양국 국민에게서 유사한 ‘앵글로색슨 코드’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달 7∼11일 진행된 이번 조사는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영국인은 ‘노동당’ ‘자유민주당’ ‘보수당’으로, 미국인은 ‘민주당’ ‘무당파’ ‘공화당’ 지지자로 나눠 이뤄졌다.
조사 결과 양 국민의 성향은 전혀 딴판으로 나타났다. 종교, 이념, 군사 개입, 국가 이익, 기후 변화와 같은 항목에서 영국인은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미국인보다 ‘좌파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적이고, 국제주의적이며, 환경 친화적 성향을 보인 영국인의 의식은 미국보다 오히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의 보편적인 성향에 더 가깝다고 이 잡지는 지적했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인 항목은 종교에 대한 태도. 영국의 보수당 지지자는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보다 훨씬 세속적인 태도를 보였다. 낙태나 동성애에 관한 질문에도 영국인은 훨씬 좌파적 성향이 강했다.
국제관계 항목에서도 영국은 유엔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 반면 미국은 우방과의 ‘특별한 양자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미국 내 가치관의 양극화가 매우 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군사행동과 관련해 미국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간 성향 차이를 지수화한 결과 편차가 90점에 달했지만 영국 노동당원과 보수당원 간엔 20점가량의 편차만 보였다.
그러나 이런 양국 국민 간 가치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미국의 돈독한 우방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잡지는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에 대한 영국인의 호감도(51%)가 프랑스인(39%)이나 독일인(30%)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양국 간 친밀도는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