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사이언스]식물인간이라구요?

  • 입력 2008년 3월 31일 10시 45분


오래 사는 나무의 대표 은행나무
오래 사는 나무의 대표 은행나무
동물과 식물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動과 植의 차이라고? 맞다. 동물은 움직이고 식물은 심어져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계속 움직이며 살아가고, 식물은 처음 난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동물은 왜 움직일까?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동물은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아야 하고 짝을 만나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식물은 다르다. 움직이지 않고 정해진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니까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떤 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대개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식물인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스스로의 힘으로 이동할 수 없고, 둘째 의미 있는 발음이 불가능하고, 셋째 충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넷째는 사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섯째 스스로의 힘으로는 접촉이 불가능하고, 여섯째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런 식물인간에 대한 설명이 정말 식물에게도 맞는 것일까?

먼저 첫째 항목에 대해 말하면 식물은 분명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고착 생활을 하기 때문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고착 생활을 한다는 것이 동물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은 이동하지 않고도 한 자리에서 수천 년을 살아남을 만큼 동물이나 인간이 갖추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산 지대에 주로 사는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명이 길고, 또 은행나무도 천 년이 넘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일본 야쿠시마에는 7000년 된 삼나무가 아직도 정정하게 살고 있다.

둘째에서 넷째까지는 외부 환경과의 응답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식물이 환경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몸의 기능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양 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줄기나 가지를 튼실하게 하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열매를 많이 만들어 빨리 자손을 남기려고 한다. 따라서 식물인간에서 식물이라는 말을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없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식물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다섯째 항목도 마찬가지다. 식물은 항상 적극적으로 밖을 향하여 가지와 뿌리를 펴고, 다른 물체에 닿으면 그것을 피할 줄도 안다. 특히 덩굴식물인 경우는 다른 물체에 닿으면 줄기를 감아올린다.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접촉이 불가능한 식물인간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항목은 배설 기관에 대한 것이다. 동물은 살아가기 위한 양분을 식물이나 다른 동물에게서 얻고, 필요 없는 것은 몸 밖으로 배설한다. 그런데 식물에게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양분을 만드는 부분이 노화해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면 배설과 같은 수단을 쓰지 않고 몸 자체를 버린다. 낙엽이나 마른 가지는 사실, 식물의 배설 작용으로 버려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식물에게는 배설 기관은 없지만, 대소변과 같은 배설 작용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에게 식물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흔히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식물인간이라 하는데, 사실 식물의 세계를 알고 나면 ‘식물’과 ‘식물인간’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은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물은 움직이지 않으면 죽고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이억주 어린이과학동아 편집장ㆍyeokj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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