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런 것까지]<1>한얼테마과학관 이우로 관장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철사에 소리 담는 와이어 축음기 처음 보죠?”

《미국과 유럽의 대형 과학관과 기업 박물관을 들러본 이들은 그 광범위한 수집품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는 왜 이런 소장품들이 없는 걸까’라는 부러움이 앞선다. 기껏해야 전시물 몇 개, 사진 몇 장을 전시하는 변변치 못한 우리 과학문화의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은 수집광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잡동사니’ ‘고물상’이라는 멸시에 찬 조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이런 시선에 절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의 열정과 노력, 애환을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기획 보도한다.》

사과 궤짝만한 노트북… 270년 된 현미경…

“폐교에 쌓아놓은 50만점… 박물관 단지가 꿈”

“광복 직후 미군정청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게 기억이 났어. 어떻게 구할 수 없을까 백방을 수소문했지. 천신만고 끝에 미국을 다녀온 사람에게 부탁을 했지. 근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헛수고 했구나’ 그랬지. 한데 얼마 뒤 이게 또 툭 튀어나온 거야. 어떻게 안 사고 배기겠어? 미치지 미쳐. 허허.”

컴컴한 수장고에서 조심스레 상자 하나를 꺼내든 노신사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경기 여주군 한얼테마과학관 이우로(81) 관장. 꺼내 놓은 상자 안에는 1920년대 마그네틱테이프가 발명되기 전 철사에 소리를 담던 와이어 레코드가 들어 있었다. 발명지인 미국에서도 찾기 힘든 희귀물품 중에도 희귀품이다.

여주군 대신면 옥촌리의 한 폐교 터엔 그가 한평생 서울 중구 황학동과 종로구 인사동,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리품을 팔아 모은 50만 점의 수집품이 모여 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당시 문을 닫은 TBC방송국의 카메라와 송출 장비, 테이프를 비롯해 전북 군산에서 찾아낸 80년 넘은 치과 의자까지 가짓수는 물론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방대하다. 270년 된 현미경, 희귀품인 쌍안현미경, 현대식 전자현미경 등 그의 소장품 목록에 오른 현미경만 1000개. 1970, 80년대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마그네틱테이프를 감아 쓰던 컴퓨터도 그의 소장 목록에 올라 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개통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승한 차량도 이곳에 와 있다. 개통식 직전 열린 광복절 행사에서 대통령 부인이 저격에 쓰러진 뒤에도 박 대통령이 꼿꼿이 탔던 바로 그 차량이다. 철도공사의 창고에서 녹슬어 가던 것을 찾아 여주까지 옮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수집품 중에 뭐가 제일 비싼가’라는 질문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게 있나. 내게는 다들 자식이나 다름없어. 물론 비싸게 주고 산 것도 있지. 근데 꼭 오래되고 비싼 것만 중요한 게 아니야.”

1960, 70년대 사회부 기자로 맹활약하던 언론인 출신의 그가 수집의 묘미에 빠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의사셨어. 어릴 때부터 현미경도 보고 그랬지. 게다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체신부 출입을 13년이나 했어. 마침 전화국의 교환기가 기계식으로 교체되던 시기여서 기계에 대한 얘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지. 현미경과 카메라 수집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인 것 같아.”

그의 컬렉션은 입소문을 타고 주위에 번져갔다. 그래서 소장품을 둘러싼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언젠가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의 관계자가 찾아왔다. 회사에 박물관을 만드는 데 정작 자사가 1970년대 생산한 어떤 제품이 없다는 것. 수소문 끝에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와 비싼 값을 쳐 준다고 했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네 물건만 보여주는 박물관이 무슨 박물관이냐’는 게 그의 견해였다.

“과학문물은 보통의 전통유물과는 성격이 달라. 기술의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지금의 노트북PC가 갑자기 등장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예전에는 사과궤짝만 한 노트북을 썼어.”

그러면서 그는 일본 캐논이 1970년대 개발한 진짜 사과상자만 한 노트북을 꺼내놓았다. 평생 그에겐 가장 기다려지는 하루 일과가 있다. 하루 두세 차례씩 들여오는 수집품을 손수 일일이 닦고 조이는 시간이다. 노랗게 색이 바랜 사용설명서도 꼼꼼히 읽어 내린다.

“당연히 사용법을 알아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주지. 과학관의 전시물은 살아 있어야 해. 진짜를 보여주고 만져보도록 하는 게 진짜 살아있는 과학교육이야. 깡통 두드려서 만든 모조품을 보여주면서 우주로켓이라고 설명하는 게 말이 되나.”

그의 꿈은 이곳에 광학, 음향학, 의학 등 주제별로 20개 전문 박물관 단지를 짓는 것이다. 또 이 모든 기록을 후대에 생생히 전할 과학관 전문 학예사 학교를 세우고 싶어 한다.

평생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살아온 그의 삶에도 슬픔은 어려 있었다.

“이곳에 와서 거의 10년을 혼자 살았어. 땅도 모두 팔고 집까지 저당 잡히면서 낡은 골동품 사는 데 써버렸는데 가족들이 좋아할 리 있겠어? 그래도 언젠가 이 모든 걸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내 뜻을 알아줄 날이 있을 거야.”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폐교 운동장엔 그가 평생을 모은 수집품들이 방수막을 뒤집어 쓴 채 때마침 내린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군수가 바뀔 때마다, 군 의원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 단지 조성을 돕겠다는 공약은 남발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행은 되고 있지 않다.

“나는 내게 남은 날을 날짜로 계산하지 않아. 시간으로 따지지. 어서 이걸 이어서 운영해갈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데 걱정이야. 얘들을 그냥 남겨놓고 가면 다시 뿔뿔이 흩어질 텐데 어쩌나.”

한평생을 사라져 가는 근대 과학문물 수집에 바쳐온 노수집가의 눈시울이 어느새 젖어들었다.

여주=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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