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라고 IT 못쓸거란 생각은 편견”
전문 교육 강좌에 어르신 수강생들 북적
한 교인이 슬라이드에 적힌 이 씨의 이름만 보고 “우리 교회에 이 정도로 솜씨 있는 아가씨가 있었느냐”며 수소문했던 것. 이 씨는 “틈틈이 익힌 정보기술(IT) 지식 덕분에 칠순을 넘기고도 아가씨 대접을 받았다”며 즐거워했다.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 각종 디지털 기기에 대한 노인들의 관심이 최근 부쩍 늘었다.
○ “우리도 폰카, MP3 쓸 줄 안다”
“어르신들이 폰카(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를 안 쓸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죠.”
LG전자에서 노년층을 겨냥한 휴대전화 ‘와인폰’을 개발하고 있는 유일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6월 내놓은 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해 봤다. 그 결과 노인들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휴대전화의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일이 있다.
노인용 ‘실버 폰’에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없애고 있는 휴대전화 업체의 생산전략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조사 결과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사는 김순녀(62·여) 씨는 “손자 손녀들이 부리는 재롱을 폰카에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노인을 위한 MP3플레이어도 개발됐다.
지난해 11월 KAIST 배상민(산업디자인학) 교수는 노인들을 위한 MP3플레이어를 선보였다. 그는 노인들이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기능을 단순화하고, 버튼 수를 대폭 줄였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에 대한 노인 수요가 늘면서 이를 겨냥한 전문 강좌도 성황이다.
경기 안산시의 노인 IT 교육기관인 ‘은빛둥지’에서는 2006년 3월 노인들을 대상으로 디지털카메라 교육반을 개설했다. 30명 정원으로 7개월간 수업하는 이 반은 매번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동영상 열기까지 불어 디지털캠코더 수업반이 따로 생겼다.
○ “컴퓨터 배운 게 살면서 제일 잘한 일”
변영희(85·여) 씨는 은빛둥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인 가운데 최고령자다. 그는 컴퓨터를 배운 지 7년 만에 젊은이들도 배우기 힘들어하는 ‘프리미어’(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조경숙(80·여) 씨는 떡집을 하는 아들을 위해 주문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그는 컴퓨터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요즘도 밤 12시까지 자판을 두드린다.
함께 수업을 받은 김근희(70·여) 씨는 영국으로 유학 간 막내아들과 연락할 때 한 푼이라도 통화료를 아끼려고 채팅을 배운 것이 컴퓨터와 만난 계기가 됐다.
김 씨는 “바다 건너 아들과 채팅으로 닭볶음탕 등의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게 삶의 낙이 됐다”며 “내 인생 살아오는 동안 제일 잘한 일이 컴퓨터를 배운 것”이라고 했다.
은빛둥지 라영수 원장은 “노인들은 디지털에 약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생각은 편견”이라며 “노인들에 대한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 세대 간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를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