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의 돼지털] 컴퓨터 싸게 사려면

  • 입력 2008년 4월 16일 19시 28분


지난 주 조카가 사용하던 컴퓨터가 고장났다며 연락했다. 대학에 들어가 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인데, 컴퓨터가 수시로 말썽을 일으켜 고생시키더니 결국에는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조카는 최신형을 살 수 있게 엄마를 잘 설득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누님에게 바이러스 문제일 터이니 그냥 고쳐서 쓰기를 권했다. 하지만 누님은 조카에게 시달리는데 지쳤다며 새로 사주겠다고 했다. 필자의 권유로 그동안 중고 컴퓨터만 사용했는데 컴퓨터가 자주 동작을 멈췄고, 이때마다 조카는 컴퓨터가 고물이라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누님에게 불평을 했다. 누님이 컴퓨터를 잘 모르다보니 컴퓨터를 잘 아는 동생과 좋은 것만 바라는 조카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누님의 결단으로 새 컴퓨터를 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어떤 컴퓨터를 사줄 것인가. 브랜드 vs 조립, 최신형vs 출시된 지 2년이 지난 모델. 학부모라면 한번쯤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를 잘 모르는 부모 대부분은 컴퓨터 매장에서 권하는 컴퓨터를 구입했을 것이다.

가격만 같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적은 비용으로 좋은 컴퓨터를 사고자 하는 바람은 인지상정이다. 브랜드 컴퓨터는 AS가 좋은 반면 가격이 비싸고 업그레이드 등 불편한 점이 은근히 많다. 반면 조립 컴퓨터는 가격이 싸고 업그레이드가 편리하지만 AS가 불편하다. 특히 컴퓨터를 잘 모르면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최신형 컴퓨터는 가장 최근의 기술이 적용된 부품으로 만들어져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대신 가격이 비싸다. 반면 출시된 지 2년 지난 모델의 컴퓨터는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최신형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만약 자녀가 무조건 최신형 컴퓨터를 요구한다면 십중팔구 게임 때문이다. 최신형 컴퓨터의 용도 중 99%가 게임용이거나 전문가용이다. 즉 게임을 하지 않을, 해서는 안 될 학생에게 최신형 컴퓨터를 사주면 비용문제를 넘어 자녀의 시간을 빼앗는 동조자가 될 수 있다. 보통 사용용도가 애매하다보면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픈 부모 욕심에 모든 것을 다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최신형 컴퓨터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를 싸게 사려면 무엇보다 용도가 분명해야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을 선택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건 제품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단 최소 1년 이상 지난 모델을 선택해야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품을 파는 등 가격 비교를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 60만원대에 판매되는 저가 브랜드 컴퓨터도 매장에 따라 20만원 이상 가격 차이를 보인다. 단 가격을 비교할 때 믿을 수 있는 매장인지와 가장 싼 모델이 꼭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처음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아나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에게는 출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가장 잘 팔린 브랜드 컴퓨터를 권한다.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바뀔 때는 모델이 출시된 지 1년이 지나면 새로운 모델이 많이 등장해 가격이 출시 때보다 상당히 저렴해진다. 하지만 보통은 2년 정도는 지나야 새 모델이 많이 등장해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기술 흐름에 따라 기간은 적절하게 선택해야 한다. 브랜드 컴퓨터 중에서 저가의 컴퓨터는 가격이 조립 컴퓨터와 비슷한 경우도 있다.

반면 고등학생 이상을 자녀로 둔 학부모에게는 출시된 지 1,2년 이상 지난 부품으로 만드는 조립 컴퓨터를 권한다. 이들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고, 또 문제를 해결하면서 컴퓨터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시 된 지 1,2년 이상 지난 부품은 안정화된 상태이므로 이들로 조립된 컴퓨터도 고장이 잘 안 나는 편이다.

새 제품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가격대 성능이 가장 뛰어난 중고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중고컴퓨터를 사고 팔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 등을 이용하면 출시 뒤 3년쯤 된 모델인 펜티엄4 CPU 3.0GHz, 하드디스크 80GB, 메모리1GB 등의 본체를 15~17만원 선에서 살 수 있다. 필자도 지난해 6년 넘게 잘 쓰던 펜티엄3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나 급하게 17만원에 앞에서 제시한 사양보다 조금 좋은 중고 본체를 샀다. 말이 중고지 개인이 새 부품으로 조립한 새 제품을 사정으로 사용도 못하고 파는 경우였다. 물론 중고는 고장나면 난감해질 수 있으니 컴퓨터를 잘 아는 주변 분의 도움을 받거나 믿을 수 있는 매장을 이용하는 게 좋다.

지금은 고장나 사라진 필자의 펜3 컴퓨터는 한때 최신형 펜4 컴퓨터와 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물론 CPU 클럭속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 빠른 속도와 많은 메모리가 필요할 때는 구형임을 확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구형 컴퓨터도 최적화해 사용하면 최신형 못지 않다. 반면 아무리 좋은 컴퓨터라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개발의 편자'일 뿐이다.

박응서 동아사이언스 기자 gopo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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