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단체등교거부 문자 돌려주세요. 퍼뜨려요 제발”
인터넷 포털-블로그 넘어 휴대전화 통해 급속히 번져
최근 큰 사회적 논란이 된 ‘인터넷 괴담(怪談)’이 인터넷을 넘어서고 있다. ‘광우병 괴담’ ‘독도 포기 괴담’ ‘인터넷 종량제 괴담’ ‘정도전 예언 괴담’ ‘수돗물 사업 및 건강보험 민영화 괴담’ 등 이른바 5대 괴담이 인터넷에 이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특히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문자 괴담 공세’에 집중적으로 노출돼 우려를 낳고 있다.
본보 6일자 A1·3·4·5면 참조
▶ 허무맹랑한 낭설, UCC-블로그 타고 번지며 ‘정설’ 둔갑
▶ 1990년대 ‘카더라 口傳’서 2000년대 ‘논리 비약형’으로
주로 유포된 메시지는 ‘독도가 드디어 일본에 팔렸습니다’ ‘외국에선 우리나라사람 인간 취급 안 한답니다’ ‘광우병 소 0.01g으로 사람 죽습니다. 그런 소가 3일 부산항으로 들어왔습니다. 최대한 알려요’ ‘쇠고기 수입하면 한국은 망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발신자를 알지 못하도록 발신자 번호가 ‘1004’ ‘0000’ 등으로 표시된 이들 정체불명의 문자메시지는 인터넷과 달리 유포에 건당 30원가량의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조직적 배후’가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괴담이 확산된 곳이 웹포털, 블로그 등 그나마 공개된 장소인데 비해 개인정보 수단인 휴대전화를 통해 유포되고 있으며, 어린 학생들이 왜곡·과장된 정보를 공유하면서 잘못된 내용을 진실인 것처럼 오인(誤認)하는 일도 적지 않다.
내용도 단순한 괴담 유포에 머물지 않고 ‘5월 17일 단체등교 거부’ 등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포함하면서 촛불문화제 참석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휴대전화로 파고드는 괴담들
경남 창원시 A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에서는 휴대전화를 가진 학생 대부분이 이달 3일부터 ‘광우병에 걸린 소가 3일 부산항으로 들어옵니다. 최대한 알립시다’라는 내용의 유언비어가 담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
발송자를 확인할 수 없는 형태의 메시지가 학생 개인당 7, 8통씩 보내졌다. 학생들은 이들 메시지를 다른 친구에게 전해주며 확산시키고 있다. 이 학교의 이모 양은 “누군가에게서 문자를 받은 뒤 다른 학교 친구의 건강이 걱정돼서 똑같은 문자를 날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A고교의 K(17) 양도 마찬가지다.
K 양은 ‘(광우병 발병 위험이 있는) ○○○○, △△, □□ 먹지 마세요. 10일만 안 먹으면 수입 중단이에요. 10일만 참아요. 퍼뜨려요 제발’이라는 허위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6일 오후 3시경부터 받았다. 발신자란에는 ‘010’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K 양뿐 아니라 반 친구들 대부분은 ‘명박이 좋았는데 광우병 때문에 속 썩여. 이명박 탄핵합시다’ ‘쇠고기 수입하면 한국은 망한다’ ‘이명박이 독도 포기 절차 중이다’ 등 각양각색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역시 발신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K 양은 “지속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오고 있다.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같은 사람이 내 전화번호를 가지고 계속 문자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방된 공간인 인터넷과 달리 은밀한 개인 통신수단인 문자메시지로 유언비어를 전달받았을 때, 더욱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학생들은 또 이런 메시지를 받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다른 친구에게 전해주면서 괴담 확산에 동조하기도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괴담 유포에 이용되거나 가담하면서 휴대전화에 이어 청소년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메신저인 ‘버디버디’를 통해서도 왜곡된 사실이 전파되고 있다.
이런 형태로 ‘○○○, ○○마트, △△△ 이용금지 광우병 소 제일 먼저 판매 재개-주의 요망!’ ‘광우병 학생시위로 5월 17일 휴교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어린 학생들이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천의 한 고교 교사는 “한 반에 30명 이상이 집회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받아 학급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광우병뿐만 아니라 이명박 탄핵 집회, 학교두발자율화 집회에 참석하라는 문자도 퍼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괴담이 가족에게 다시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또 부산에 사는 주부 김모(38) 씨는 4일 서울의 조카에게서 ‘광우병 소의 젤라틴 성분이 아이들 기저귀에 들어가면 끝장’이라며 ‘21개월 된 딸아이의 기저귀를 한꺼번에 사재기해 놔라’라는 문자를 받았다. 김 씨는 웃고 넘기려고 했지만 포털사이트에 조카가 주장한 글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인터넷 홈쇼핑에서 기저귀 6상자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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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난리치고 혼자 투쟁하는 방법도 좋아”
학생들 선동 구체적인 행동지침
조직적으로 유포했을 가능성도▼
○‘조직적 배후’ 의혹도 적지 않아
인터넷 괴담은 어린이들을 등장시키며 감정적인 부분을 자극하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행동지침도 등장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아빠와 딸의 대화’라는 제목의 한 행동지침은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광우병에 대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찾아 설득을 요구해 보라. 안 되면 울고 난리 치고 혼자서 투쟁하는 방법도 좋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의 모 초등학교 6학년을 맡은 한 선생은 “문자를 받았다는 얘기는 없지만 아이들이 많이 물어본다”며 “미술시간에 아이들이 (광우병으로) 소가 쓰러져 있는 그림을 그려서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당국은 비용이 들지 않는 인터넷 공간의 괴담 유포와 달리, 대량 유포에 적지 않은 통신비가 드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괴담이 확산되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발신인의 번호도 확인할 수 없도록 바꿔놓았기 때문에 첫 유포자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최근 초등학생 및 중고교생 사이에 유포된 문자 내용은 △MBC PD수첩 시청 권유(‘우리 국민이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내용이니 꼭 보세요’) △0교시 수업 반대를 위한 5월 17일 전국 등교 거부 운동 권유 △오늘 여의도 촛불집회 참여 권유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포기 절차를 밟고 있다 △광우병에 걸려 5년 안에 모두 죽는다 △인터넷으로 광우병 검색 권유 등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당국자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메시지가 집중 살포된 것은 누군가가 전화번호 명단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유포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정보통신 이용자의 정보가 유출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38세 주부인데요…”인터넷 게시판 알고보니 중학생포털 허위정보 거를 방법 없어 장난성 글에 쉽게 속아▼
최근 한 방송사의 주말 오락 프로그램은 지난해 말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봄 개편에서 폐지됐다.
38세 주부라고 밝힌 이 누리꾼은 ‘OO프로그램의 실체’라는 제목의 글에서 ‘출연자들의 태안 봉사활동 모습이 방송됐지만 실제로 그들은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위압적인 자세로 현장 분위기를 망쳤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이 주부의 글을 퍼다 날랐고 제작진은 “허위 사실”이라며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 사이 10%대를 넘나들던 시청률은 2%대로 추락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주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인 데다 올린 글의 내용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떨어진 시청률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38세 중2 주부’ 사건은 최근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 과정의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각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실명제 원칙에 따라 글쓴이의 ID와 글을 올린 시간 등이 표시되지만 나이나 성별 등은 표시되지 않는다.
나이 성별 등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엄격히 보안이 유지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수사기관만이 조회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연령대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게시판이나 댓글, 채팅 등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장난성’ 글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3∼19세 인터넷 이용자는 약 977만 명으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인터넷에 올린 글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이번 ‘광우병 괴담’이 순식간에 퍼진 것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한’ 청소년 누리꾼들이 ‘퍼 나르기’의 주축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