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상 “초등생이 좌지우지”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성인 능가하는 인터넷 활용능력 무기로

블로그 운영-UCC 제작에 ‘e쇼핑’까지

검증안된 정보 쉽게 믿고 무분별 유포도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주부 강모(32) 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딸아이가 온라인쇼핑몰에서 장난감을 골라 ‘장바구니’ 코너에 옮겨 놓고 엄마를 불러 ‘결제해 달라’고 떼를 쓴 것이다.

강 씨는 “평소 간단한 게임을 즐기긴 했지만 1학년짜리 딸아이가 쇼핑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무서운 속도’로 인터넷에 적응하는 아이를 보면 이래도 괜찮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 ‘엄마는 우리 못 따라와요’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장악 능력이 어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유아 때부터 인터넷 환경에 노출된 이들은 인터넷 활용 능력 면에서 어른은 물론 중학생 고등학생 ‘형님’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과시한다.

특히 컴퓨터 활용 기술은 오히려 부모 세대들보다도 훨씬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의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 현상이 세대 간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화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1∼6학년의 인터넷 이용률은 99.3%로, 사실상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중고교생이나 20, 30대 어른보다 뛰어난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 활용 능력을 보여 준다.

초등학교 4학년인 정모 양은 “동영상 파일 만드는 법이나 인터넷 다루는 법을 종종 부모님께 가르쳐 드린다”며 “웹 폰트(글씨체)나 플래시 영상을 직접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유명 연예인 팬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직접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초등학생 10명 중 4명꼴)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콘텐츠와 문화를 생산하고 있다.

네이버의 어린이 전용 서비스인 ‘쥬니버’의 ‘가상소설’ 코너에 올라온 초등학생들의 자작(自作)소설만 14만 편에 이를 정도다.

○ 제어장치 없는 ‘초딩’만의 세계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세계가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초등학생은 P2P(개인간 파일 공유)사이트 등에 접속해 성인물을 내려받고 해당 파일을 메신저로 친구와 주고받을 정도로 능숙한 솜씨를 자랑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실정이다.

쥬니버 지식인 코너에는 “아빠 몰래 야한 동영상을 봤는데 섹×를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까지 올라오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기성세대들이 이해하기 힘든 언어로 자신들만의 온라인 문화를 공유하기도 한다.

게임 채팅방이나 포털 게시판에서는 ‘◐ど녕∼ 님 겜 쩔어여. 친신할게염(안녕∼ 게임 정말 잘하시네요. 친구 신청 할게요)’과 같은 이른바 ‘초딩체’가 통용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쉽게 믿는 초등학생들은 선정적인 이슈나 폭력적인 게시물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6학년생인 김모 양은 “광우병 논란이나 성폭행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부모님에게 묻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한다”고 했다.

실제 옛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과거 삭제된 주요 포털의 사이버 폭력 게시물의 절반은 초등학생이 올린 것으로, 중학생 게시물의 2배가 넘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접하는 현재의 인터넷은 무분별한 정보가 범람하는 매우 열악한 공간”이라며 “호기심이 왕성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인 만큼, 그들만의 ‘닫힌 문화’를 교화해 줄 가정과 사회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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