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10여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면서 프로 게이머들의 실력도 과거보다 몇 배나 향상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독특한 전략이나 특정 성향을 가진 프로 게이머들이 업계를 주도했었지만, 이제는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지 않았다면 정상에 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탄탄한 기본기 중 하나는 ‘물량’이다. ‘물량’이란 자원을 빠른 시간 내에 병력으로 만들어 쏟아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2003년 6월 17일에 벌어졌던 강민 선수와의 대결은 내가 ‘물량 테란’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경기였다. 당시 나는 다른 선수들이 잘 쓰지 않았던 6 애드온 전략을 가끔 썼다.
이것은 팩토리의 애드온 6개를 동시에 켜는 것으로, 준비하기는 힘들지만 한 순간에 병력을 폭발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초반부터 앞마당 멀티를 시도한 나는 강민 선수를 빠른 조이기로 압박해 들어갔고, 탱크와 SCV로 압박해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강민 선수도 셔틀에 두 마리의 질럿과 한 마리의 리버를 태우고 기습에 나서는 등 만만치 않게 반격해 나왔다. 경기가 시작되고 18분이 지나, 나는 대규모의 탱크와 벌처로 총 진격에 나섰다.
하지만 강민 선수는 함정을 파고 있었고, 하이템플러에 의해 진격에 나선 나의 병력이 전부 잡히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강민 선수가 주도권을 잡고 내가 주춤했어야 정상이었지만, 6 애드온 전략을 쓴 나는 불과 3분 만에 다시 화면이 가득 덮을 만큼 많은 수의 탱크를 보유해 재진격에 나섰다. 결과는 망연자실한 강민 선수의 표정과 함께 압도적인 KO승.
온 화면을 덮는 탱크로 강민 선수를 쓰러뜨리자 당시 방송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김창선 캐스터가 “전율입니다. 온몸이 떨립니다!” 라고 외쳤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때의 경기 이후 ‘스타크래프트’ 업계에는 ‘물량’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많은 프로 게이머들이 ‘물량’을 많이 뽑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윤열
위메이드 폭스 소속 프로게이머로 게이머 ‘4대 천왕’으로 불리고 있다. 게임넷 최초로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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