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미 수집을 해 온 김주필 동국대 생명과학과 교수. 20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천 계곡 깊숙이 위치한 ‘아라크노피아’ 거미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한국 거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아냈다.
“1200여 종으로 추정되는 한국 거미 중에는 독거미가 없어. 수줍음이 많고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가기 일쑤야. 무는 녀석들도 몇 종 있지만 살짝 따갑기만 할 뿐 사람에게 아무런 해가 없지. 아마도 천혜의 기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성품을 빼닮았나 봐.”
한국 거미는 외국 거미보다 뿜어내는 아미노산의 종류가 월등히 많고 질도 우수하다.
국내 ‘거미박사 1호’인 김 교수가 거미와 사랑에 빠진 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지렁이를 연구하려고 했어. 1960, 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다 보니 오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지. 근데 오염된 습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꾀를 낸 게 지렁이만큼이나 환경오염의 지표종으로 불리는 거미로 연구 대상을 바꾼 거야.”
거미는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한 지역의 환경오염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지표종이다. 더욱이 해충을 먹어 치우고, 독과 소화효소는 신약이나 첨단 신소재로 쓰일 수 있다. 또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지구상에 가장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주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사재 100억 원을 털어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 6만6000m²의 숲에 세운 ‘아라크노피아’는 국내 유일의 거미수목원이다. 이곳에는 그가 3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100여 개 나라에서 수집한 5000여 종, 약 20만 마리의 거미가 관람객을 반갑게 맞고 있다.
“고생한 거? 말로 다 할 수 없지. 이런 일도 있었어. 1970년대 초 소백산맥에서 채집하던 때였어. 밤새 거미를 잡기 위해 산천을 쏘다녔지. 근데 다음 날 주변이 발칵 뒤집어진 거야. 우리 손전등 불빛을 북한 무장간첩의 것으로 오인한 군 당국이 산을 에워싸고 우리를 체포했어. 통신도 잘 안되던 시절이라 꼬박 이틀을 붙잡혀 있었지.”
1985년 지금의 거미수목원 인근 숲에서 처음 발견한 한국땅거미를 비롯해 그와 제자들의 노력으로 세계 학계에 보고된 거미만 140여 종. 여기에는 한중 수교 전 중국을 방문해 고생 끝에 백두산 천지에서 채집한 ‘백두산거미’와, 지금은 보기 힘든 너구리거미, 겹거미, 홑거미도 포함돼 있다.
정년을 1년 남긴 원로 학자는 지금도 연구거리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요즘은 인가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농발거미’가 가장 큰 관심사다.
“낮에는 냉장고나 가구 밑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단잠에 빠진 깊은 밤에 슬금슬금 기어 나와 바퀴벌레를 잡아먹어. 사람을 물지도, 나쁜 부산물을 남기지도 않지.”
집집마다 2, 3마리만 키워도 바퀴벌레니 모기 같은 해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때마침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눈빛으로 아이들이 박물관을 들어섰다.
“처음엔 거미를 두려워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어느새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 여기서 거미를 본 아이들 중에 언젠가 뛰어난 분류생태학자와 진화학자가 나올 거라고 믿어.”
남양주=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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