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파도 배변하면 아픈 증상이 싹 없어져요”…‘과민성 장 증후군’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배가 아플 때가 있다.
배가 살살 꼬이는 것처럼 아프고,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아플 때도 있다. 그러나 검사를 해도 딱 드러나는 것은 없다.
‘이유 없는 배앓이’는 성인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더 자주 나타난다. 자녀에게 이런 배앓이 증상이 나타나면 부모는 ‘꾀병 부리지 마라’며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자칫 소홀하기 쉬운 소아, 청소년 복통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아봤다.
○ 스트레스 심하게 받으면 배앓이 나타나
중학교 1학년인 김유진(13) 양은 자주 배꼽 위쪽으로 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식중독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설사는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설사를 하지 않으면서 배꼽 위 상복부가 자주 아픈 것은 ‘기능성 소화불량증’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기능성’이라는 말은 위나 장에 염증과 궤양이 없고 소화기관 모양이 잘못돼 있지도 않은데 통증을 호소할 때 붙이는 말이다.
주 1회 이상 배가 아프고, 이런 상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면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의심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병원을 찾은 4∼18세 소아, 청소년 가운데 이 증세로 판명된 사례가 12.5∼15.9%를 차지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배변과 관계없는 것과 달리 배변을 하면 배가 아픈 증상이 가라앉는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과민성 장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과민성 장 증후군이 있으면 일주일에 1, 2일 하루 4회 이상 변을 본다. 대변 형태는 설사처럼 무르기도 하고 매우 딱딱하기도 하다. 때로 점액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배가 빵빵하다”(복부 팽만)고 호소하기도 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증과 과민성 장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에 분포된 신경과 장의 운동 능력과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신경은 뇌신경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스트레스 등 심리적 자극을 받으면 자주 배앓이가 나타난다. 장운동이 너무 빠르거나 떨어져도 배앓이를 하게 된다.
○ 배 문질러 주면 혈액순환-심리적 안정 효과
어린아이가 기능성 소화불량이나 과민성 장 증후군에 걸리면 증상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유를 모른다고 해도 통증은 실제로 느껴지기 때문에 도움과 치료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고재성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어린이들은 배가 아프면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꾸 아프다고 하면 학교생활에 스트레스는 없는지, 가족·친구 간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능성 소화불량, 과민성 장 증후군은 특별한 약물치료는 하지 않는다. 배를 문질러 주거나 따듯하게 해주면 혈액 순환을 돕고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정장제(장운동을 도와주는 약물)나 ‘프로바이오틱스’ 성분이 함유된 유산균 제제를 복용하기도 하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가면 진경제(통증을 멈추게 하는 데 쓰는 약물)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아스피린 계통의 진통제(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성 약물)는 피해야 한다. 맵고 기름진 음식이나 카페인 음료도 배앓이 증상을 악화할 수 있다.
○ 원인 모를 열 계속되면 감염 의심
배앓이를 호소하는 아이 중에는 반드시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체중이 줄거나 △성장이 더디거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구토를 심하게 하거나 △심한 설사를 너무 오래 할 때는 다른 질환이 있을 수 있으므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면 맹장염일 수 있고, 원인 모를 열이 계속되면 감염에 의한 것일 수 있으니 병원에서 진단받도록 한다. 배가 아프며 토사물 색깔이 초록색을 띠면 장이 꼬이거나 마비됐을 가능성이 있다.
윤신원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배앓이 때문에 자주 조퇴를 하거나 아침에 계속 지각을 하게 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검사를 해서 병의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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