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불어도 순항…국내 첫 대회용 요트‘G-마린호’의 과학

  • 입력 2008년 6월 13일 03시 00분


“호이스트!”

스키퍼(선장)가 소리를 지르자 요트 앞에 커다란 돛(제내커)이 펴졌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돛이 부풀자 요트는 수면 위를 스치듯이 달렸다. 파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는 10일 2008 코리아매치컵이 열리는 경기 화성시 전곡항에서 2004∼2006년 세계 요트 챔피언인 피터 길모어 씨, 국내 프로 요트 선수인 김동영 씨와 함께 이 대회 공식 경기정인 ‘G-마린호’에 탑승했다. 국내업체 암텍이 제작한 G-마린호는 국내 최초의 대회용 요트다.

40여 분간 바람을 타고 시속 15∼20km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다닌’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쾌함을 얻기 위한 대가는 치러야 했다. 바람 방향에 맞춰 중심을 잡느라 요트 안에서 잠시도 쉴 틈 없이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요트가 바다 위 부표를 돌자 진행 방향이 180도 바뀌며 바람이 역풍으로 변했다. 승무원들은 재빨리 제내커를 거둔 뒤 작고 팽팽한 삼각형 모양의 돛(지브세일)을 펼쳤다. 삼각형 돛은 앞쪽으로 조금 부풀어 올랐고 요트는 바람을 받으며 부드럽게 전진했다.

배는 순풍을 받아 앞으로 전진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요트는 맞바람이 불어도 거뜬히 전진할 수 있다. 도대체 요트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해답은 삼각형 모양의 지브세일에 숨어 있다. 바람에 평행하게 맞춘 돛이 수직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면 앞뒤로 공기의 압력이 달라진다. 볼록한 앞쪽은 바람이 지나는 속도가 빨라 기압이 감소하고 반대쪽은 기압이 증가한다. 따라서 기압이 낮은 앞쪽으로 움직이려는 힘이 생긴다. 비행기가 떠오르거나 축구공이 휘는 원리와 비슷하다.

역풍이 심하게 불 땐 요트를 좌우로 방향을 바꾸며 지그재그로 항해한다. G-마린호는 정면에서 좌우 40도 각도의 바람에도 전진할 수 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요트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2, 1, 업(up)!” 누군가의 외침에 기자를 제외한 모든 승무원이 선체 오른쪽으로 뛰어가 앉았다. 배가 조금이라도 덜 기울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요트는 선체가 가벼운 데다 돛이 크기 때문에 강한 바람에 쉽게 휘청거린다. 하지만 전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선체 아래에 수직 날개처럼 생긴 ‘킬(keel)’이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잠겨 보이지는 않지만 배가 좌우로 기울어질 때마다 물속에서 균형을 잡는다.

G-마린호는 킬의 가장 아래에 납으로 만든 1.8t의 무거운 추(벌브 킬)가 달렸다. 날개가 크면 물의 저항이 커 속도가 떨어진다. 반면 날개가 작아도 무거운 추가 달리면 요트가 옆으로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G-마린호는 120도 기울어져 돛이 물에 빠져도 다시 설 수 있다. 120도가 넘으면 돌아가던 관성에 의해 물속에서 한 바퀴를 돌아 똑바로 선다. 길모어 씨는 “요트가 120도나 기울려면 태풍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며 “이런 날은 위험하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유재훈 한국해양연구소 해양운송신기술연구사업단장은 “해양레저산업은 지식경제부의 차기 신성장동력산업의 후보 중 하나”라며 “우리나라 대형 선박에 사용하는 첨단 기술을 요트에 적용하면 우리나라도 요트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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