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유학 갔던 오혜원(가명·18) 양이 최근 방학을 맞아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부모는 그를 보고 깜작 놀랐다. 1년 전 유학길에 올랐을 때 오 양은 키 161cm에 45kg으로 말랐었는데 무려 22kg이 불어나 67kg이나 됐기 때문이다.
부모는 오 양이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달고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을 뿐만 아니라 다 먹고 난 후에는 화장실로 달려가 목에 손가락을 넣고 토했다. 토한 후에는 조금 있다가 또 먹을 것을 찾았다. 유학 가기 전에 너무 먹지 않아 걱정이던 오 양이 심각한 폭식증에 빠진 것이다.
○ 거식증 환자, 말랐는데도 살쪘다고 생각
폭식증은 거식증과 함께 양대 섭식장애로 꼽힌다.
거식증 환자는 말랐는데도 자신이 살쪘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보면 불안감이 생기면서 멀리하게 된다. 배고픔을 참는 것이 자기 몸을 제대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4주 동안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거나 의도적으로 구토를 한 적이 있다면 ‘폭식형 거식증’, 없다면 ‘제한형 거식증’으로 분류된다.
폭식증에 걸린 사람은 음식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없어 한꺼번에 보통 사람이 먹는 양 이상의 음식을 급하게 먹어치운다. 거식증 환자처럼 폭식증 환자도 체중이 늘까 봐 두려워한다. 정신없이 먹고 난 후 억지로 토하거나 이뇨제 등을 복용하고 과도하게 운동한다. 구토를 많이 해 목이 쉬는 경우도 많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거식증 환자의 30∼40%가 폭식증으로 넘어간다.
○ 주위의 과도한 기대나 통제가 섭식장애 부른다
섭식장애는 일차적으로 마음의 병이다. 주변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인 14∼24세에 주로 나타난다.
섭식장애는 주변 사람, 특히 부모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식사장애 클리닉 교수는 “음식, 체중, 체형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가정에서 생활하거나 과도한 보호와 통제 속에 자라면서 독립심을 키우지 못하면 섭식장애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오 양의 경우 사춘기가 되면서 살이 찌는 것을 걱정한 어머니에게서 “다이어트를 하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오 양은 음식량을 절반 이상 줄이고 운동량은 세 배로 늘려 두 달 만에 10kg 이상 줄였다. 그러나 감량한 몸무게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살이 찌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오 양은 “유학을 가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그동안 억압됐던 음식에 대한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환자 본인의 자신감이 부족하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면 섭식장애가 악화되기 쉽다.
거식증 환자 최모(17) 양은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다이어트도 죽을 듯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음식을 멀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희찬 백상신경정신과 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의 30% 이상이 부모의 잘못된 다이어트 권유로 섭식장애가 발생한 경우”라고 말했다.
○ 환자와 가족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섭식장애를 이겨내려면 환자의 의지와 주변의 격려가 중요하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섭식장애 환자에게 동기를 갖게 하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식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김 교수는 “폭식증 환자에게 억지로 먹지 못하게 한다든가, 거식증 환자에게 먹도록 강요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게 하고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면서 이해해 줘야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가족과 환자 당사자의 노력만으로 섭식장애를 극복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병의 진행 단계, 신체적 정신적 위험 정도 등에 따라 치료 계획을 수립한다. 섭식장애 때문에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면 입원치료도 받을 수 있다.
병원에서는 동기 부여, 가족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받게 된다.
약물을 쓰기도 하는데 폭식증이 우울증, 강박증, 불안증을 동반할 경우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억제제(SSRI)’를 사용한다. SSRI는 섭식장애 재발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정신병적이라고 판단될 때는 항정신병 약물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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