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야, 너는 정말 ‘참’새야….”
칙칙한 갈색에다 경박스럽게 총총 걸음을 하고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흔해빠진, 일 년 내내 보이는 참새. 기자는 어릴 때 나무에 앉아있는 참새를 향해 새총을 쏘며 놀곤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에 참새가 다닥다닥 앉아 있는 나무를 향해 새총을 쏘았는데 뭔가가 툭 떨어졌다. 참새를 겨누면서도 막상 새가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무 밑을 보니 참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새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보니 이미 죽어있었다. 그때 손 위에 얹힌 참새가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힘없이 젖혀진 고개와 오그라든 발가락이 애처로웠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참새를 나무 밑에 묻어줬다. 그 뒤 다시는 새총을 잡지 않았다. 솜털같이 가벼웠던 참새의 비현실적인 촉감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사실 기자는 참새보다는 봄에 왔다 가을에 훌쩍 떠나는 제비를 더 좋아했다. 늘씬한 풍모에 어울리는 초고속 저공비행. 어린 시절 길을 가다 땅에 바짝 붙어 비행하는 제비에 부딪힐까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그걸 즐기는지 코앞에서야 방향을 틀어 위로 솟구치거나 옆으로 획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제비가 집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제비가 초가집이나 기와집도 아닌 우리 집에 둥지를 틀다니! 아침에 일어나서도, 학교에 다녀와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제비집을 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하루는 제비 새끼 한마리가 둥지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 녀석한테 파리도 잡아 먹이며 한참을 데리고 놀다 다시 올려준 기억이 난다. 가을이 오고 어김없이 제비는 둥지를 뒤로 하고 갈 길을 떠났다. ‘내년에 다시 올까?’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제비가 더 이상 기자가 살던 동네를 찾지 않았다. 이제는 도시에서 제비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기자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제비야말로 ‘참’새로 남아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제비의 그 멋진 비행솜씨가 눈에 선하다.
얼마 전 새의 부리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조류학자인 국립환경과학원 박진영 박사와 통화를 하다가 제비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왔다. 제비가 현란한 비행술을 지니고 있는 것은 날아다니는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라고. 옆에서 보면 부리가 짧지만 정면에서 주둥이를 벌리면 얼굴이 가려질 정도다. 비행을 하다가 벌레에 근접하면 입을 쩍 벌려 그대로 나꿔챈다고 한다. 그런데 도시화로 맘껏 날아다닐 공간이 부족하고 벌레도 사라져 결국 떠나게 된 셈. 반면 참새는 부리가 절충형으로 생겼다. 즉 끝이 뾰족해 벌레도 잡아먹을 수 있고 뒤쪽은 도톰해 딱딱한 씨앗도 깨 먹을 수 있다.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급격한 환경변화에 살아남는 데는 유리한 셈이다.
그런데 흔하다고만 생각했던 참새도 예전만큼 눈에 띠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살기 좋을 때 왔다가 힘들어지면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철새인 제비보다 우리와 1년 내내 동고동락하는 텃새인 참새야 말로 우리의 ‘참’새가 아닐까. 만에 하나 참새도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면 화려한 제비만을 향해있던 애정을 소박한 참새에게 나눠주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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