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다르면 ‘뭇매’ 일쑤…토론 없는 ‘아고라 광장’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18일 02시 57분


송경재 경희대 교수 분석
‘촛불’ 찬성이 반대의 14배
찬성 중 62%가 욕설-비방
“무조건적 다수결만 존재”

국내 포털업계 2위인 다음의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자 일부 좌파 언론매체는 ‘토론의 성지(聖地)’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광장’이란 극찬을 쏟아냈다.

토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이다. 그러나 요즘 아고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퇴진’이란 오로지 한 의견만 들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기보다 반(反)정부 투쟁을 ‘결의’하는 글로 게시판이 도배되다시피 한다. 반대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면서 토론방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학계와 인터넷 업계에서는 “다음 아고라는 건전한 여론 형성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반대 의견은 필요 없는 토론방

[명박 퇴진] [명박 타도]

요즘 아고라 토론방에 올라오는 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반정부 구호가 제목 앞에 붙어 있다. 그렇지 않은 글에는 ‘알바(아르바이트) 글이니 읽지 말라’ ‘너 수당 받으러 왔냐’ ‘명박이 빠(이 대통령 지지자를 의미하는 속어)’라는 제목의 답글을 달아 열어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이른바 ‘진보적 언론학자’들 사이에서도 “아고라가 주목받은 이유는 기존 제도권과 주류 언론에서 소외됐던 목소리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인데 그 아고라 안에서도 ‘소외층’이 생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가 5월 8, 9일 촛불시위(촛불문화제) 찬반 토론 댓글 486건을 분석한 결과 찬성(341건·70.2%)은 반대(24건·4.9%)의 14배나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찬성 의견의 상당수(62.5%)가 욕설이나 비방이고, 대안적 비판은 19.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한쪽 의견이 너무 강해 반대 의견을 감정적으로 과격하게 공격하기 시작하면 이견(異見) 있는 누리꾼들은 아예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는 이른바 ‘프리징(freezing) 현상’이 나타나는데 지금 아고라의 상태가 이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S대 학생 이모 씨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과격불법 촛불시위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펴자 아고라에서는 “머리에 꽃핀 꽂고 미친 척이라도 해라” “사실은 한나라당 알바다” 같은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이 이뤄졌다. 심지어 ‘S대는 자폭하라’며 학교까지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다.

○아고라 운영 방식의 위험성 지적 많아

다음 측은 “논란이 되는 아고라의 (반정부적) 베스트 글도 누리꾼의 추천율이 70∼80% 이상이면 올라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준이 되는 숫자는 다음 내부에서 예고 없이 바꿀 수 있게 돼 있다.

다음에서 뉴스의 편집, 블로거뉴스의 선택, 아고라 토론글의 베스트 선정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25명 안팎이다. 다음의 한 관계자는 “3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8명 정도가 이 모든 일을 하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누리꾼이 올리는 개인정보 내용, 인신공격, 업무방해 조장 같은 불법적 내용이 제대로 여과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송 교수는 “인터넷 토론에서 진정한 집단지성이 나오려면 찬반이 있는 가운데 서로 경쟁적으로 논리와 증거를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아고라에서 심도 있는 논의는 점점 사라지고 무조건적인 다수결 원칙만 존재하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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