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그늘’서 춤추는 사이버폭력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8분


방송인 정선희씨 - 서강대생 등 인신공격 곤욕

포털등 피해구제 미비… 방통위 “제도개선 검토”

평화를 상징하는 ‘촛불’ 뒤에서 벌어지는 일부 ‘마녀사냥식 사이버 폭력’이 도를 넘고 있다.

일부 세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긍정적 견해를 보이거나 반(反)정부 촛불시위대의 빗나간 행태를 비판하면 유명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선의의 피해자를 낳고 있다. 컴퓨터와 전화를 통해 익명성의 뒤에 숨어 진행되는 이런 사이버 폭력의 피해는 크고 심각하지만 그에 대한 법적 구제는 너무나 더디고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들 “말하기가 겁난다”

“개인적으로 해명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이젠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네요. 또 다른 공격의 빌미만 줄 것 같아서요.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서강대생 이모 씨는 1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촛물문화제(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법치국가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불법집회는 안 된다”는 ‘원론적 발언’을 했다가 촛불시위 지지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본거지 역할을 해 온 다음의 온라인 토론방 아고라 등에는 이 씨를 ‘서강녀’ ‘홍보녀’ ‘카페녀’라고 조롱하고 심지어 그가 재학 중인 서강대를 모욕하는 내용의 글도 이어졌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이 씨의 휴대전화로도 욕설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심한 충격으로 최근 휴대전화 번호도 바꾼 그는 22일 어렵게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너무 순식간에 일방적인 여론의 공격을 받아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촛불시위 관련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방송인 정선희 씨는 최근에도 근거 없는 공격에 계속 시달려 통원치료까지 받았다.

정 씨의 매니저인 최광희 씨는 “요즘도 인터넷에는 ‘정선희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10년 이상 다녀 조용기 목사, 이명박 대통령과 친하다’ ‘이달 6일 사과방송은 녹화방송이었다’는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 씨는 “정 씨는 동네 교회에 15년 이상 다니고 있고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도 없으며 6일 사과방송도 생방송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 씨는 자신이 진행해 온 라디오 프로그램 ‘정오의 희망곡’ 등 MBC의 3개 프로그램에서 도중하차했다.

반면 촛불시위에 참석하거나 시위대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연예인은 요즘 TV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왜곡된 현상은 시위를 부추긴 현재 일부 방송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수 이하늘 씨는 최근 MBC 오락프로그램 ‘명랑 히어로’에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1960년대 쥐잡기 운동 포스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와 “시위대가 이 대통령을 ‘쥐××’라고 조롱하는 것에 호응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지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사이버 폭력에 대한 법적 구제 유명무실

누구나 사이버 폭력의 억울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지금의 가해자가 언제 어느 순간에 미래의 피해자가 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가 유통돼 피해를 본 경우 이를 삭제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수많은 불법 게시물의 위치(URL), 글번호, 글제목 등을 일일이 찾아낸 뒤 요청해야 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포털사이트는 또 게시물 약관규정에 △상호명, 전화번호, 실명 등 개인정보 유포 △확인되지 않은 소문 유포로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내용 △범죄행위와 관련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 △욕설 또는 게시글 도배행위 등을 자율적으로 삭제할 권리를 얻어놓고 있지만 이를 강력히 적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관계자는 “하루 300만 건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오는데 운영자 측이 이 중 불법 게시물을 일일이 찾아서 삭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인력 운영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근 광고주 협박 사태의 한 피해 기업 관계자는 “포털의 서비스 운영자 자신도 못 찾는 불법 게시물을 피해자인 개인이나 영세 업체에 일일이 찾아내라는 것은 피해 구제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글을 올린 가해자를 찾아 소송을 걸더라도 큰 실익이 없고 이를 퍼뜨린 익명의 가담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는 명예훼손 등을 저질러도 뒤탈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은 2004년 5816건에서 지난해 1만2905건으로 늘어났다.

방송통신위원회 당국자는 “포털이 피해자의 법적 구제 절차를 적극 돕도록 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검찰 ‘광고중단 강요’ 수사팀 가동▼

일부 누리꾼의 동아일보와 조선 중앙일보 등에 대한 광고 중단 강요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전국 검찰청의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광고 중단 압박이 주로 인터넷에서 진행돼 형사 처벌이 어려운 개인적인 의견 게재가 아닌 특별히 악의적인 사안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만간 경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대책회의를 열어 인터넷에서의 광고 중단 압박의 실태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또 검찰이 직접 수사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경찰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을 지휘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특별 지시로 검찰이 20일 광고 중단 압박 사건에 대한 수사 방침을 밝히자 누리꾼들이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법무부와 검찰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대부분 대검 홈페이지에 실명 이름을 남기며 “자수합니다” “나를 잡아가라” “국민을 위한 검찰이 돼 달라”고 주장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