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야?”
“저는 중입니다.”
“나는 중3이야.”
한 스님이 대중목욕탕에서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흘러간 옛 유머가 있습니다.
중학생이 스님과 ‘맞짱’을 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각각 승복과 교복을 벗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목욕탕은 현실공간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옷가지를 벗어던진 일종의 가상공간이 되는 셈이죠.
요즘 이목이 집중된 인터넷의 ‘광장(廣場) 민주주의’를 지켜보면서 이 유머가 떠올랐습니다. 광장이 자칫 목욕탕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광장 민주주의’는 누구나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질서를 깨는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광장의 목소리가 핏대를 세우다 보면 기존 질서를 지탱하는 전문가들의 이성과 권위는 설 곳이 없어집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광장을 떠날 수밖에 없죠. 실제로 미국산(産) 쇠고기의 인간광우병 위험성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을 놓고 전문가들의 균형 잡힌 토론이 인터넷 광장에서 얼마나 이뤄졌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무조건적 평등이 지배하는 광장은 결국 모두가 나체(裸體)로 만나는 목욕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전문성이나 객관성에 근거한 사실보다는 여론 대중의 구미에 맞는 좀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의견이 주목받는 새로운 질서가 통용되기 마련입니다.
목욕탕의 매력인 ‘나체의 평등’에 맹목적으로 빠져 들다 보면 자칫 몇몇이 주도하는 ‘문신(文身)의 질서’에 호도되기 쉬워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목욕탕의 질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터넷의 자율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웁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자율은 누구나 인터넷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술적 중립성 차원의 이론입니다. 이미 언론의 행태를 보이는 일부 포털에 무한대의 권한을 주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최근 두 달 새 ‘광장’이라는 의미의 다음 토론방 ‘아고라’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고라(광장)가 ‘목욕탕의 함정’을 벗어나 진정한 ‘토론의 성지(聖地)’임을 입증하려면 참여자들이 스스로 촛불을 끄고 이성의 힘을 보여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용석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