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사이언스/케미컬 에세이] 멘톨 유감

  • 입력 2008년 8월 5일 14시 13분


독일의 프란츠 유진 쾰러가 1887년 펴낸 ‘약용식물’에 실린 페퍼민트 세밀화. 주로 잎에 정유가 분포한다.
독일의 프란츠 유진 쾰러가 1887년 펴낸 ‘약용식물’에 실린 페퍼민트 세밀화. 주로 잎에 정유가 분포한다.
잎이나 꽃에서 향기가 나는 풀을 허브라고 부른다. 이런 식물을 통에 넣고 수증기 증류해 얻는 기름이 아로마 오일 즉 정유다. 대표적인 허브로는 라벤더, 로즈마리, 페퍼민트가 있다. 라벤더는 리날롤 아세테이트라는 분자가, 로즈마리는 시네올과 캠퍼라는 분자가, 페퍼민트는 멘톨이라는 분자가 각 식물의 특징적인 향기를 부여한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아로마테라피가 소개되면서 이런 허브들이 알려졌지만 페퍼민트(Mentha piperita)의 경우는 비슷한 식물인 박하(Mentha arvensis)가 한반도에 자생해 한약재로 쓰였다. 이들 민트류(Mentha속 식물들)의 특징인 ‘화한 향기’를 부여하는 분자가 바로 멘톨이다.

멘톨이 들어있는 제품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게 치약이다. 멘톨이 빠진 치약은 상상이 안 갈 정도다. 면도 뒤 바르는 남성용 스킨에도 멘톨이 소량 들어간다. 이처럼 멘톨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제품에 쓰이는 이유는 실제로 이 분자가 차가움을 감지하는 피부의 감각센서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연구자들은 멘톨이 TRPM8이라는 냉각수용체와 결합해 이 수용체가 뇌로 저온 신호를 보내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멘톨의 시원한 향기는 향기가 아니라 진짜 차가운 느낌이었던 것. 결국 멘톨은 콧속의 냄새수용체 뿐 아니라 피부의 냉각수용체에도 달라붙는 특이한 분자인 셈이다. 왜 민트류 식물은 동물의 뇌를 속여 온도감각을 교란시키는 물질을 만드는지 궁금한 노릇이다.

멘톨이 많이 쓰이는 또 다른 제품이 바로 담배다. 멘톨은 담배 특유의 거칠고 자극적인 냄새를 가려줘 니코틴이 고농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미국 담배회사의 내부문서를 입수해 분석했는데 이들이 멘톨의 함량을 조절해 청소년들이 흡연에 쉽게 빠져들게 유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미국공중보건저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담배 가운데 특히 멘톨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은 ‘ㅇㅇㅇ 멘톨’이라고 이름 짓는데 이런 종류를 선호하는 사람은 좀처럼 담배를 끊기가 어렵다고 한다. 지속적인 금연캠페인으로 담배 소비량이 줄었음에도 멘톨 담배 판매량은 그대로여서 상대적 비율이 올라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멘톨 담배를 피우는 비율은 어릴수록 높아 35세 이상은 흡연자의 30.6%인데 18~24세는 35.6%, 12~17세는 43.8%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담배에 멘톨 같은 첨가물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기자는 가끔 따뜻한 물에 페퍼민트 정유를 몇 방울 떨어뜨린 뒤 발을 담그며 피로를 푼다. 수증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향을 맡으며 온도 감각이 섞이지 않은, 후각세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멘톨(페퍼민트 정유의 30~40% 차지)의 순수한 향기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아이러니를 느끼곤 한다. 후각과 온도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놀라운 분자인 멘톨이 이런 식으로 이용된다니 딱한 노릇이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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