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보스톤 글로브지와 블로그 메타사이트 '보잉보잉'에는 인간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마술사들로부터 배우는 신경 과학자들에 대한 글들이 잇따랐다.
사람의 마음에는 아직도 탐사되지 않은 미개척지가 광대하다. 신경과학자들은 역사가 수십년에 불과한 신경과학보다 수백년, 길게는 천년 가까이 이어져온 마술이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고도 새로운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과학과 마술의 새로운 협동은 지난달 말 '네이처 신경과학 리뷰(Nature Reviews Neuroscience)'에 실린 마술사들과 신경과학자들의 합동 논문으로 작은 결실을 낳았다. 또 이번 주엔 로널드 렌싱크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교수가 마술과 심리학에 대해 '인지 과학의 경향(Trends in Cognitive Sciences)'에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월에는 뉴욕 과학아카데미에 마술사 아폴로 로빈스가 참석해 발표했고 내년에 열릴 신경과학회 연례 학회에도 마술사들이 초청받은 상태다.
성공적인 마술은 인간의 지각이 정확하지 않으며 쉽게 조작 가능하다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마술의 기본은 왼손으로 몰래 소매에서 카드를 뽑아내는 동안 지팡이를 흔드는 오른손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처럼 관객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마술쇼에 자주 쓰이는 밝은 색깔의 물건들과 온갖 종류의 반짝이들, 뿌연 연기, 잘 알아듣기 어려운 주문들도 이처럼 관객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한 장치들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지각이 영화 카메라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지난 10년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사람의 지각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종종 놓친다. 가장 유명한 것이 고릴라 실험이다.
과학자들은 검은 셔츠와 하얀 셔츠를 입은 두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피실험자들에게 각 팀의 패스 회수를 세도록 했다. 동영상에선 도중에 고릴라 복장을 뒤집어쓴 한 여성이 나타나 경기장을 어슬렁거렸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피실험자들은 패스 횟수를 세느라 정신이 팔린 탓에 나중에 고릴라를 봤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처럼 시각적 인지는 영화 카메라보다는 번쩍 하는 섬광에 더 가깝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우리가 집중하는 작은 파편의 세부사항만을 겨우 인식할 뿐 나머지는 과거의 기억과 우리 자신의 예측, 거칠고 피상적인 시각들로 채워 넣는다. 사람은 주변 환경을 본다기보다 주변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렌싱크 교수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일종의 가상현실에 가깝다"고 말했다.
마술은 이렇게 취약한 우리의 인지적 능력을 조작해 이뤄진다.
마술사 아폴로 로빈스 씨는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몰래 물건을 꺼내는 마술을 할 때 직선형 동작보다 반원형 제스처를 쓰는 것이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에 더 쉽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눈은 직선형 동작에 본능적으로 초점을 맞추지만 더 지속적인 주의와 집중을 요구하는 반원형 동작은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공중에 공을 던졌다가 사라지게 하는 트릭은 마술사들이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 중 하나다. 이것 역시 사람의 불완전한 지각을 활용한 마술이다. 이 마술의 기법은 공중에 반복적으로 볼을 던졌다가 마지막엔 실제 공은 손에 쥔 채 시선과 행동으로만 (던지지 않은) 공의 상향 궤도를 좇는 것이다.
말은 쉬워도 실행하기 어려운 테크닉이다. 하지만 제대로 하면 사람들은 실제로 공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착각하게 된다. 뇌는 실제와 환각을 잘 구분하지 못하며 인지 과학자들은 뇌가 왜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마술과 과학의 협동으로 사람의 지각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밝혀낸다면 그 쓰임새가 컴퓨터 그래픽, 길거리의 표지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