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감별은 아직 불법입니다.”
지난달 30일 의료법의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자 산부인과마다 태아의 성별을 알려달라는 산모들의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산부인과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판결 이전보다 평균 10% 이상 이런 요구가 증가했다.
그동안 많은 산모들이 아기용품을 미리 마련하려면 임신 28주 이후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태아 성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의료법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알려지자 성감별 요구가 다시 폭주하는 것.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개정시한으로 정한 내년 말까지는 태아 성감별은 여전히 불법행위다.
물론 국회에서 태아 성감별을 금지한 의료법 제20조 2항을 개정하면 그 전에도 태아 성감별은 허용된다. 이때도 28주 이전에는 성별을 알 수 없으며, 28주 이후라 해도 낙태 목적의 성감별은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산모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당장 성감별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산부인과 의원은 “판결 이후 태아 성감별이 허용된 것으로 아는 임신부들이 강하게 성감별을 요구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의 한 교수도 “임신부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난처하다”며 “빨리 의료법이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산부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에는 ‘태아 성별을 의사에게 물어보는 법’ 등의 글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산모는 “내년 말까지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 불법이지만 의사들도 예전만큼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태아가 어느 정도 자란 임신 16주 이후에 넌지시 물어보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상황 때문에 태아 성감별이 불법이면서도 공공연히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다른 병원에서는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데 왜 여기서는 알려주지 않느냐며 따지는 고객에게 어떻게 ‘모른다’로 일관할 수 있겠느냐”며 “빨리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많은 범법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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