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20여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고, 날씨는 무덥고, 불쾌지수가 저절로 올라가는 날이었다.
마침내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버스정류장에 이미 다른 버스들이 줄줄이 서있어서 타야 하는 버스는 저 뒤에서 멈추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버스를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그들 중에는 벌써 우산을 접고 빗속을 뛰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달려온 승객들을 모른 척하고는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정류장을 향해 슬슬 움직였다. 사람들은 버스를 따라 우르르 이동해야만 했다.
정류장 안쪽 전용차선에 도달해서야 기사 아저씨는 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은 기사 아저씨의 불친절함과 배려 없음을 투덜대며 버스에 올랐다. 당연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기사 아저씨의 불친절한 서비스를 발화점으로 해서 모든 대중교통에 대한 불신이 활활 타올랐다.
다음 정류소에 도착할 즈음 갑자기 아저씨는 "거기 아줌마, 버스가 설 때까지 앉아있어요."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자 연세 든 아주머니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 게 보였다. 정류소에 도착하여 문을 열어주자 아주머니는 서둘러 내렸고, 기사 아저씨는 내린 것을 확인한 후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 광경은 두어 번 더 반복되어 벌어졌다. 한 정류장에서는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가 탔는데, 앞 좌석에 앉으려 하자 예의 그 무뚝뚝한 말투가 날아왔다. "앞 좌석은 위험한걸 몰라요? 안쪽으로 들어가요."
기사 아저씨의 퉁명스런 말과 태도가 익숙해질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도 버스가 선 다음에 일어났다. 원칙을 지키는 안전운행 덕분에 불유쾌했던 첫인상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문득 나를 되돌아본다. 나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원칙을 지키고 있는 어른일까?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과연 현재의 내 모습은 몇 점 정도일까?
아마도… 85점 이상은 될 것 같다. ‘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는 될 것 같다. 그나마 ‘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아이들이 곁에 있는 덕분이다. 지니움의 아이들은 늘 내 ‘가슴의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다.
서예원 지니움 원장 ywlak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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