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사이언스/식물에게 배운다] 김밥 속의 식물학

  • 입력 2008년 8월 14일 20시 21분


먼저 간단한(?) 문제를 하나 내 보자.

상추는 식물분류학적으로 어느 과(Family)에 속할까?

①참나물과 같은 미나리과다.

②배추와 같은 겨자과다.

③민들레와 같은 국화과다.

④시금치와 같은 명아주과다.

필자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김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내는 김밥을 잘 싼다. 맛도 맛이지만 이것저것 골고루 넣어 밥보다는 속의 내용물이 훨씬 많다. 때론 밥이 겉에 나와 있는 누드김밥도 섞여 있다. 어느 날 문득 김밥을 먹다가 내용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물분류학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호기심은 급기야 김밥을 헤집게 했다. 김밥 속의 식물을 분류해보면 이렇다.

먼저 가장 중요한 김. 김은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류다. 그 다음 밥은 쌀로 만들고 쌀은 벼에서 나오므로 벼과에 속한다. 김밥을 반들반들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참기름과 밥 속에 섞여 있는 참깨는 참깨과에 속하지만, 속의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깻잎은 들깨로 꿀풀과에 속한다. 아내는 김밥을 쌀 때 꼭 깻잎을 넣는다. 자, 이제 본격적인 내용물을 살펴보자.

단무지의 무는 겨자과, 시금치는 명아주과, 우엉은 국화과다. 그런데 김밥 속 식물분류 중 압권은 당근이다.

“여보! 당근이 무슨 과에 속하는 줄 알아?”

“당근? 그런 건 당근 관심 없지.”

“그래도 맞혀봐. 무와는 전혀 관계없고 당신이 좋아하는 아구찜에 많이 들어가는 채소 중 하나랑 똑같아.”

“아구찜? 그럼, 콩나물과인가?”

“쯧쯧. 그만합시다. 당근하고 콩나물하고 연결이 되나?”

“콩나물이 아니면 미나리인가? 미나리는 더 연결이 안 되는데?”

“딩동댕! 정답은 바로 미나리과.”

“에이, 여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근과 미나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

“당신이 보지 못해서 그렇지 당근 꽃과 미나리 꽃이 똑같단 말이야.”

“아무튼 난 관심이 별로 없거든. 김밥이나 자셔.”

필자와 아내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종종 있다.

내친 김에 시야를 밥상 위로 옮겨 보자.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는 어떤 식물들일까?

채소를 한번 분류해 보자.

배추, 양배추, 순무, 갓, 냉이는 무와 같이 겨자과에 속한다. 파, 양파, 마늘, 달래, 부추는 백합과다. 고추, 피망, 파프리카, 가지, 감자, 토마토는? 모두 가지과에 속하는데 생김새는 조금씩 달라도 열매의 구조는 똑같다. 감자의 열매는 고구마 꽃만큼이나 보기 어렵지만, 분명 방울토마토와 똑같이 생겼다. 또 오이, 참외, 수박, 호박은 박과다. 그 외에도 아욱(아욱과), 생강(생강과), 근대(명아주과) 등이 있다.

자, 이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상추가 배추와 같은 겨자과일까?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상추는 참나물이나 시금치와도 전혀 관계없다. 상추는 오히려 민들레, 쑥갓, 치커리, 고들빼기, 머위, 씀바귀 등과 같은 국화과에 속한다. 상추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잎을 따먹고 방치된 상추를 보면 어김없이 민들레와 같은 노란 꽃이 피어 있다. 상추와 민들레와의 관계는 소나무와 잣나무와의 관계와 같다. 겉으로 보기에 자연은 이렇게 엉뚱한 구석이 많다.

이억주 어린이과학동아 편집장 yeokj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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