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 뒤에 인터넷에는 소비자로서 불만을 토로하거나 화를 내는 게시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전직 또는 현직 수리기사로서 컴퓨터 수리비에서 ‘기술료’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는 내용의 게시글도 올라왔다.
게시글에서 수리기사들은 “컴퓨터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어디가 고장났는지 문제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3시간에 걸쳐 수리를 한 뒤 부품료와 별도로 기술료 2만원을 부르면 도둑놈 취급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문제를 파악해 부품을 교체하려고 하면 고객이 직접 할테니 그냥 가라며 출장비까지 주지 않으려고 한다”며 문제를 알아내는데 들어간 기술료 뿐만 아니라 이동하는데 들어간 비용까지도 주지 않으려는 사례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게시글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남들보다 컴퓨터를 잘 알았던 탓(?)에 1990년대 초부터 주변에 컴퓨터에 관한 조언을 하거나 도움 요청을 많이 받았다. 당시 컴퓨터 구입시 바가지 쓰는 사례가 많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조언이나 동행을 했다. 또 컴퓨터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고쳐줬다. 대부분은 바이러스나 운영프로그램 오류, 또는 기기를 동작시키는 프로그램인 드라이버가 잘못 설정되는 문제였다. 하드웨어가 고장난 사례는 드물었다.
컴퓨터와 몇 시간 씨름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됐다. 당시에는 드라이버 설정이 생각보다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고, 운영프로그램도 지금처럼 안정적이지 않아 자주 설치했다. 이러는 사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용자의 컴퓨터 습관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결국 몇 달, 심지어 며칠이 지나면 다시 또 발생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주 불림을 받았고 그만큼 힘들었다.
이때는 하드웨어에만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던 분위기 탓인지 나의 노력에 비용이 발생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몇몇 지인들은 차비에 보태라고 얼마의 돈을 줬다. 하지만 기술료라는 생각을 하고 주는 건 아니었다.
자연히 어느 시점이 되자 컴퓨터에 관한 조언이나 도움에 거리를 두게 됐다. 따로 사는 가족에게도 가능하면 고장났을 때 출장 AS를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 PC를 권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갈 수 없고 또 내가 들이는 시간보다 AS받는 게 더 저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 수리사기 사건을 보니 출장 AS가 가능한 제품이라고 마냥 권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이제 가족의 컴퓨터가 고장나면 가능하면 고쳐주고, 안되면 AS를 받은 뒤에라도 점검을 해줘야할 것 같다.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수리기사는 무조건 하드를 포맷하고 운영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이로 인한 소비자의 불편보다는 빠른 문제해결이 우선이다. 하지만 경험이 많고 능력있는 수리기사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가능한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능력인 기술료를 인정하지 않아 스스로 불편을 사고 있는 건 아닐까.
박응서 동아사이언스 기자 gopo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