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가 우리를 받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내년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탄생 200돌이다. 이를 기념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윈의 항로를 따라 탐험에 나서는 프로젝트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0일 권영인(47·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사진) 박사를 포함한 한국 탐험대원들이 몸을 실을 ‘장보고호’가 미국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 항에서 진수식을 가졌다.
본보 7월 3일자 A24면 참조 ▶ “다윈의 항로 따라 ‘종의 기원’ 다시 쓴다”
장보고호는 길이 10.5m, 폭 4.27m, 높이 14.02m로 거센 파도와 얕은 바다에서 안정적으로 떠 있도록 선박 2개를 이어 붙인 이색적인 모습이다.
원래는 항해 성공 기원을 담은 뜻에서 ‘바람호’로 지었지만 신라시대 동북아 해상을 호령한 장보고의 기백을 잇는 뜻에서 최근 이름을 바꿨다. 고성능 디젤 엔진이 달려 있지만 170년 전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탐사대도 돛을 이용해 항해할 계획이다.
장보고호에는 레이더와 무전기, 항법장치 등 항해에 필요한 장비 외에도 바닷물과 지질, 대기를 측정하는 각종 센서와 분석 장비가 상당수 실린다. 장비는 주로 바닷물과 대기 성분을 조사하는 데 사용된다.
22일에는 이번 탐험에서 가장 요긴하게 사용될 이산화탄소 측정 장치가 실릴 예정이다. 이 장치는 미국 동부해안과 카리브 해, 남미 연안의 공기와 바닷물 속에 포함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게 된다.
다윈이 탐사를 통해 진화론의 영감을 얻었듯 권 박사도 이번 탐험에서 최근 심각해진 환경 변화의 증거를 짚어보겠다는 생각이다. 혹시 모를 난파에 대비해 선실 2개 부피의 식량도 선적되는 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카리브 해의 거센 ‘허리케인’과 ‘해적’은 이번 탐사에서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탐험대는 거친 파도가 예상되는 마젤란 해협과 태평양을 최대 난코스로 꼽는다.
그러나 권 박사는 이번 탐사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에 더 마음이 걸린다.
“아직 우리 사회가 탐사나 탐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탐사를 한다면 ‘왜 저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고 생각합니다. 자원과 환경 연구를 위해서라도 탐험은 의미가 큽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위험천지’의 해양탐사를 돕겠다고 선뜻 나선 사람은 없었다. 도움의 손길은 뜻밖에 해외에서 먼저 날아들었다. 장보고호를 만든 미국의 선박회사 측에서 건조 비용을 15% 싸게 해주겠다는 것. “의미 있는 탐사인 만큼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성원도 보내왔다. 실험장비를 공급하는 독일의 한 회사는 이번 탐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장보고기념사업회에서도 일부 후원을 약속했다.
탐험대는 30일(현지 시간) 오전 9시 장보고호를 타고 이틀간 항해해 10월 3일 미국 뉴저지 주 동부해안운하(ICW)에 도착한 뒤 411일간의 험난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