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어조기교육 열풍이 불면서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유아들을 외국인 보모에게 맡기고 무리를 해서라도 방학이면 초등생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급증하는 사교육비의 30%가 영어를 배우는 데 쓰인다.
과연 영어가 유창해지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외국어 학습은 빠를수록 좋다는 ‘상식’이 최근 도전받고 있다. 모국어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외국어까지 배우면 아이에 따라서는 스트레스로 정서 발달에 장애를 겪게 된다.
아동언어발달을 연구하는 연세대 심리학과 송현주 교수는 “두 언어를 배우려면 시간도 두 배가 필요하다”며 “그 결과 이런 아동들은 정서 발달에 꼭 필요한 ‘놀이’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어느 수준까지 외국어를 배우는 데도 아이들이 청소년이나 어른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들 사이에는 보편적인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국어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발음, 철자 체계가 외국어 학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언어심리학을 전공한 고려대 남기춘 교수는 “영어 습득의 성패는 시기가 아니라 학습 환경”이라며 “정말 영어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 영어강사 대부분은 수년이 지나도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반면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수개월만 지나도 우리말이 부쩍 는다. 계속 출연하려면 ‘우리말’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35년을 살다가 2005년 귀국한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서구 교수는 “과학 분야 국제학회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면 충분하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며 “영어로 발표할 때 발음이 좀 어색하거나 관사를 제대로 못 써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영어에 대해선 어느 정도 기본 지식만 갖추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는 영어가 꼭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공교육이 제공할 수 없는 높은 영어 수준을 요구한다”고 우려했다. 과학동아 10월호에서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한 오늘날 영어조기교육의 허와 실을 특집으로 다뤘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