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새겨진 바위가 인생 바꿨죠”
우연한 경험으로 필생의 목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김일권(44)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게는 서울대 종교학과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1995년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로 떠난 답사가 이런 경험에 해당한다. ‘한국고대종교사연구회’의 일원으로 이곳의 오줌바위에 새겨진 고대 암각화를 살펴보는 것이 답사의 목적이었다.
바위를 찬찬히 들여다보던 김 교수의 눈에 더블유(W) 모양으로 연결된 성혈(性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즉시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고구려 고분 벽화들에 생각이 이르렀다. 한국 고대생활사에 관한 슬라이더 제작을 위해 고구려 고분 벽화의 장면을 분석하던 중 여러 벽화에서 별 그림을 발견했던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 가운데는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W 모양 별 그림도 있었다. 김 교수는 “그때는 별 그림이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연구를 해볼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흥리의 경험을 계기로 우리 고문헌과 유물에 새겨진 별자리 연구에 몰입했다. 애초에 유교 불교 도교 등 3개 종교를 비교하는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던 그는 연구 주제도 ‘고대 별자리 그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자’는 것으로 바꿨다. 이런 작업 끝에 그는 ‘고대 중국과 한국의 천문사상 연구’라는 논문으로 199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교수의 연구는 인문학인 역사학과 종교학, 자연과학인 천문학에 두루 걸친 연구로 인정받는다. 1983년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가 대학원 때는 종교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통섭적 연구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의 학문 분야는 ‘역사천문학’으로 불린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보니 그가 발표하는 내용은 늘 새롭다. 그는 “현재 북극성에 해당하는 고구려 시대의 별자리를 ‘북극삼성(北極三星)’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내가 처음 이었다”고 말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북극성 자리에 3개의 별로 구성된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북극성은 4, 5개의 별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고구려의 국력이 중국과 대등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의미한 차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최고 권력자를 하늘의 아들로 볼 정도로 하늘을 중시하던 시절이므로 고구려가 중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면 독자적인 천문관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고구려 벽화 별자리 연구의 전문가인 북한 사회과학원 소속 이준걸 교수의 연구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도 했다. 북두칠성을 남쪽에 있는 별로 기술한 부분 등을 바로잡아 발표한 논문은 북한 학자들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새로운 학문에 대한 기존 학계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박사 논문 평가 때는 왜 종교학과에서 별자리를 연구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김 교수는 “지도교수께서 ‘하늘의 문제를 다룬 논문이 종교학의 논문이 아니라면 무엇이 종교학인가’라며 적극 방어를 해준 덕분에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학계에선 고대사 분야의 선배 학자들로부터 도전해볼 만한 주제라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격려에 힘입어 그는 10년 동안 논문 90여 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이제 10년간의 고구려 별자리 연구를 잠시 접고 조선시대로 접어들 계획이다. 그는 “조선 태조 때 건국의 정당성을 하늘의 뜻에서 끌어들이자는 의미로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천문도로 꼽힌다”면서 “고구려 때에 비해 천문학이 기울기는 했지만 자료가 있는 대로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교학과의 금장태 교수께서 언젠가 ‘자네, 일가를 이루겠네’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반향이 아직은 크지 않지만 교수님의 그 말씀을 지렛대 삼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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