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보여주기 위해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

  • 입력 2008년 10월 6일 02시 56분


‘소리없는 총알’ 괴담-악플 피해 3인의 경험담

“대인기피증 - 무기력감으로 오랫동안 고통

전화번호 자주 바꾸고 아이와 외출도 못해”

전문가 “면전에서 욕먹는것보다 상처 더 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죽음까지 생각했다….”

인기 탤런트 고 최진실 씨처럼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랫동안 갖은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사이버공간의 악플 테러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불특정 시점에 가해지고 무한복제와 확대재생산이 가능해 피해자는 더 무기력해지고 결국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까지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악플의 칼날은 유명 방송인부터 현역 국회의원, 교육운동에 참가했던 평범한 주부까지 가리지 않았다. ‘악플 피해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봤다. 》

수년 동안 계속 악플에 시달렸던 방송인 허수경 씨는 대표적인 악플 피해자다.

허 씨는 두 차례의 이혼 후 “돈 많다고 바람을 피운 뒤 남편을 내쳤다”, “순수하고 착한 척하는 가식을 집어치워라”는 등 갖은 악플에 시달렸고 맡은 지 6개월밖에 안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폐지되기도 했다.

지난해 ‘정자 임신’으로 딸을 출산한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남자는 필요 없느냐’는 등의 악플에 시달렸다.

‘이혼 경력이 있는 엄마’라는 점에서 최진실 씨와 공통점을 가진 허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 씨가) 두 아이를 두고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특정 다수의 공격으로 생긴 자괴감은 모성으로도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음에도 죽어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최 씨가 안타깝다”며 흐느꼈다.

허 씨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 악플에 항변하고 싶어도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 나쁜 인간으로 낙인찍혔다는 자괴감은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심각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사람들과 연락을 끊으려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꾸고 1년에 두 번씩 이사를 다녔다. 아이까지 해코지를 당할까봐 함께 외출하는 것도 피했다.

방송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독설과 두둑한 배짱으로 유명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이런 그도 “무차별적인 악플 공세를 받고는 우울증에 걸렸고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 의원은 2005년 ‘대졸 대통령론’이 인터넷상에서 왜곡돼 퍼진 후 ‘전삐라’, ‘전여오크’라는 별명을 얻고 “고졸이 안 된다면 (전 의원의 모교인) 이대 출신은 더 안 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등의 악플에 시달렸다.

그는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더 큰 피해를 겪는 사람들을 대신해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겨우 버텼다”고 털어놨다.

전 의원은 “최진실 씨의 두 아이에게서 엄마를 앗아간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해야 한다”며 ‘최진실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 대표 A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A 씨가 활동하는 단체가 2006년 ‘교복값 내리기 운동’을 벌이자 의견을 달리하는 누리꾼들이 “교복업체에 돈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하고 싶으냐”는 등의 악플로 공격했다.

그는 “한동안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어 무력감에 빠졌고, 결백을 보여주기 위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 씨는 그때의 후유증 탓인지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거절했다.

악플은 사이버공간의 특성상 그 내용이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불안감을 피해자에게 주기 때문에 ‘면전에서 욕먹는 것’보다 더 상처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 교수는 “악플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정적인 부산물”이라면서 “얼굴을 모르는 상대로부터 악의적인 말을 듣는 것은 피해자에게 견디기 힘든 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영상취재 : 동아닷컴 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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