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132명 설문… “정년보장-연봉인상” 73%
“이공계 처우, 장기적 안목서 평가를” 목소리도
‘발상 전환하기, 실용적인 전문성 찾기, 주변 협조 이끌어내기.’
9월 19일부터 동아일보가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연재한 ‘억대연봉 과학기술인’ 시리즈에 소개된 7명의 성공스토리에서 헤드헌팅 전문가가 뽑은 공통점이다. 본보는 또 정부출연연구원협의회를 통해 국내 과학 및 산업기술 분야 종사자 13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이공계에 대한 대우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문가의 분석과 설문결과를 종합해보면 기술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공계 스스로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게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 이공계, 정년 보장과 연봉 인상 원해
데이터베이스 기술자가 유전자 연구로 눈을 돌리고 유해물질 분석기술로 유럽 환경규제 때문에 고민하는 수출기업의 도우미로 나섰다. 외국인과도 오랜 친분을 쌓아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본보 9월 19일자 A23면, 9월 26일자 A23면, 10월 3일자 A25면 참조
▶ [억대연봉 과학기술인]<1>전산맨서 생물정보학자로 허철구 박사
▶ [억대연봉 과학기술인]<2>업체 기술지원 최은경 박사
▶ [억대연봉 과학기술인]<3>연구 국제교류 이규호 박사
이번 시리즈에 실린 전문가들은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고 실제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으며 주변의 도움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 아직도 많은 이공계 전문인력이 노력이나 성과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응답자의 73%인 93명이 정년보장(40%·51명)과 연봉인상(33%·42명)이 가장 필요한 개선책이라고 답했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 기초과학 분야 연구기관의 정규직원 평균연봉이 45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설문 응답자의 62%(81명)가 이공계 처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성과를 기준으로 이공계 인력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한 응답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부를 창출하고 미래 산업발전을 가능케 하는 건 과학기술”이라며 “(기술의) 경제적 가치와 (이공계 인력의) 처우 수준은 장기적 안목에서 평가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 기획 업종서 이공계 선호 추세
이번 시리즈에 소개된 인물들을 비롯해 과거 이공계 인력은 여러 해 동안 한 분야에 집중해 전문가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엔터웨이파트너스 김경수 헤드헌팅사업부 대표는 “이공계 전문성을 기본으로 다른 분야 지식도 겸비한 ‘스페셜라이즈드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며 “뛰어난 제품을 개발했지만 출시 시점을 놓쳐 실패하는 것은 이런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커리어케어 박지헌 이사는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 붓는 순수함은 이공계 특유의 장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체 연구소의 경우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
헤드헌팅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규사업 개발이나 연구기획, 전략기획 같은 업종에서 이공계 인력을 선호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의사결정을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 연구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사례가 느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박 이사는 “7∼10년 연구개발이나 생산기술 관련 경력이 있고 실적이 좋은 인재가 특히 몸값이 높다”며 “기획업무에 관심이 있다면 미리 재무지식을 갖추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新이공계 인재 배출 물꼬 튼다
정부도 최근 들어 새로운 유형의 이공계 인재 배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식경제부와 교과부는 2006년부터 기술과 경영지식을 함께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와 성균관대, 포스텍, 한국기술교육대 등 4개 대학에 기술경영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 2월 첫 졸업생 158명이 배출될 예정이다.
교과부는 또 지난해 11월 연구개발인력교육원을 설립해 전국 연구기관과 기업의 이공계 인력을 대상으로 연구기획 및 관리, 기술사업화, 리더십 등에 대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1220명이 교육을 받았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 산업기술재단 김용근 이사장
“미래 이공계 인재 유형은 융합형”
최근 기업의 이공계 인력에게 경영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한 ‘기술경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근(사진)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은 “미래 이공계 인재의 유형은 ‘융합형’”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이공계 전문인에 대한 대우가 낮다는 인식이 여전한 상황인 만큼 이공계 출신이 경영마인드와 예술적 감성 등을 함께 갖춰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
기술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경제적 안목이 시급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은 기술 개발 능력은 뛰어나지만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해요. 대학의 기술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되는 게 이 때문이죠. 단순히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세계 시장이 우리를 주목하게 만들기 어려워요. 기술의 상업적 가치를 정확히 평가해야 시장거래를 활발히 할 수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또 “사회와 융합될 기술을 개발하려면 어릴 때부터 생산성보다는 창의성에 더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문구점에서 산 키트를 조립하는 게 기술 교육의 현 수준입니다.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다채로운 교육 환경이 필요해요.”
이에 산업기술재단은 내년부터 전 세계의 사례를 분석해 새로운 개념의 기술교과서와 지역별 산업기술박물관 구상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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