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불안하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전염병 퍼지듯 전 세계로 확산해 가고 있다. 요동치는 환율과 폭락하는 주가에 전 세계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 1997년 당시와 같은 IMF 구제 금융 시기가 다시 찾아올까 모두 전전긍긍한다.
사람의 몸속에도 한 국가의 금융 감독체계와 같은 면역체계가 있다. 국가가 금융을 적절히 관리 감독해야 국가 재정이 튼튼하게 유지되고 번영을 구가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잘 해주어야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면역체계 부실해 지면 암 발병률 높아져… 바이러스가 원인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부실해진다는 것은 암의 발병위험 역시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상시 우리와 공존하던 바이러스가 정상 세포를 서서히 암세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면역체계의 부실을 틈타 서서히 악성 종양을 서서히 만들어내는 바이러스 중에 ‘엡스타인-바(Epstein-Barr)’ 바이러스라는 게 있다. 이 바이러스는 흔히 피곤하면 입술주위에 어김없이 찾아와 물집을 만들어 내 번거롭게 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별명은 ‘스텔스(stealth) 바이러스’.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적지 깊숙한 곳까지 공격을 가하는 스텔스 전폭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상시에는 우리 몸에 아무런 증상을 일으키지 않고 세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성인의 90% 이상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이 바이러스와 공생(共生) 한다. 그러나 완벽하고 영원한 공생관계는 없듯이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와의 공생 관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이 바이러스가 가장 좋아하는 세포는 면역세포인 B림프구인데 림프구 표면에 있는 CD21이라는 단백질수용체를 통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B림프구의 분화 과정에서도 살아남아 결국 가장 분화되고 수명이 긴 메모리 B 림프구에 자리를 잡는다. 바이러스로서는 영원한 삶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현미경으로도 못 보는 바이러스, 병리학자 눈은 못 속여… 암 치료법 개발 한창
광학현미경으로 세포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볼 수 있을까? 전자 현미경을 사용한다면 가능하지만, 광학 현미경의 해상도로 바이러스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숙련된 병리의사는 광학현미경 검사만으로도 암세포 내에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염된 암세포와 주변 세포들을 수 없이 관찰했던 경험을 통해 변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학자들은 암의 발병원인일 수도 있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의 특성을 활용해 역으로 암을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바이러스가 위(胃)의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있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아직 실험단계에 있지만, 효과는 기대해 볼만하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암세포 내에서 잠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이러스가 증식 하게 되면 암세포가 터져서 죽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죽어가는 암세포 근처에 있던 암세포도 함께 죽게 되며, 정상세포는 보존되니 이야말로 일거양득이다. 현재 사용하는 항암제는 암세포뿐 만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니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높은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와 공생하기 위해 진화해 왔다. 야생마 같은 발암 바이러스를 잘 길들어서 오히려 암세포 치료에 활발히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상상해 본다.
사람의 몸속에선 암(癌) 적인 요소인 바이러스가 오히려 암을 치료하는 세상이다. 최근 경제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사회 시스템적으로도 평소 소홀했던 암적인 요소를 잘 다루어 보자. 한층 경제적으로 진보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곧 만들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김영식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병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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