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식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모(56·경기 남양주) 씨는 5일 째 서울대 응급실에 머물고 있다. 그는 한 달 반 동안 무려 세 번 응급실을 찾았고 그 때마다 4, 5일 씩 머물렀다.
의료진은 진통제를 놓고 튜브로 위 속의 음식물을 제거해 주는 간단한 응급 처치만 해준다. 담당의사는 "복통의 원인이 식도암인데, 암 말기 환자여서 딱히 해줄 것이 없다"며 "집도 먼 이 씨에게 근처 병원에서 편히 치료받으라고 하지만 '갈 병원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산 거주 환자도 오는 응급실
3차 종합병원 응급실 환자 10명 중 2~3명은 이 씨와 같은 암 환자다.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 환자도 있다. 송봉규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암이 뼈로 전이된 말기 암 환자가 새벽에 '다리 아프다'며 KTX를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3차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이유에 대해 암 환자들은 "원래 봐주던 병원에서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이 있는데다 다른 병원 가 봐야 '수술한 병원 가보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의 암 환자 보호자는 "열이 심하게 나서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갔는데 '수술한 병원 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다른 병원은 아예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암환자의 응급실 체류 시간, 일반환자의 2, 3배
암 환자는 다른 환자보다 응급실에 더 오래 머문다. 이들은 '중환자'지만 급박한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는 아니어서 치료가 뒤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서울아산병원 등으로부터 10월 한 달 간 암환자의 응급실 이용실태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암 환자들은 일반 환자보다 응급실에 두세 배 더 오래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다보니 암 환자들에 밀려 뇌출혈 등 진짜 응급 환자들은 간이침대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암 환자들은 집 근처에 일상적 치료를 맡아줄 병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정은희 서울대병원 진료협력팀장은 "응급실에 있는 암 환자 10명 중 한 명은 자기의 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병원을 찾지 못해 병원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화의료기관 육성해야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은 치료와 관리가 모두 필요한 질환인데 관련 정책이 '치료'에만 초점 맞춰져 있고 '관리'는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믿을만한 집 근처 병원이 없는 암 환자들은 3차 종합병원을 고집하게 되고, 이에 따라 1,2차 병원은 찾는 환자가 없어 암 치료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암 환자들이 3차 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악순환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
허교수는 "통증 조절 등의 가벼운 치료는 집 근처에서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시설들을 늘리는 한편 말기 암 환자는 편안히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지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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