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여자 후배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하더군요. 그 후배가 보여 준 e메일은 ‘발신인 김용석’으로 보내진 음란성 스팸메일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발신자를 변경해 보낸 것이죠. 자칫하면 ‘변태 선배’로 몰릴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해외 연수 준비를 하던 한 정부 부처의 공무원은 미국에서 보낸 e메일을 받지 못해 연수가 무산될 뻔했습니다. 알고 보니 정부의 e메일 시스템이 스팸메일 필터링 조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영어로 된 메일을 스팸메일로 오인해 지워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집에서 노트북PC를 가져와 개인 웹메일 주소로 e메일을 주고받아야 했습니다(공무원은 업무용 PC로 일반 웹메일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스팸메일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 지긋지긋한 스팸메일은 30년 전인 1978년 미국 컴퓨터 업체 DEC의 판매원 게리 투어크가 인터넷의 전신(前身)인 알파넷 사용자들에게 광고를 발송한 것이 시초라고 하네요.
빌 게이츠 전 MS 회장은 2003년에 “2006년이면 스팸메일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죠.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하루에 발송되는 e메일 약 600억 통 가운데 80% 이상이 스팸메일 등 쓰레기(junk)편지라고 합니다.
처음엔 광고만을 담았던 스팸메일은 이제 점점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금융기관을 사칭해 돈이나 개인정보를 뜯어내는 피싱메일, PC에 악성코드를 심은 뒤 중요 정보를 빼가는 바이러스메일 등 심각한 피해를 주는 스팸메일이 늘어나고 있죠. 스팸메일을 막으려다 업무상 중요한 e메일을 받지 못하거나 스팸메일을 지우느라 시간을 보내는 등 무형(無形)의 경제적 피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 세계 누구나 공통의 표준으로 문서를 주고받을 수 있는 e메일은 인류가 만든 가장 환상적인 도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악성코드가 창궐하는 딜레마도 함께 생겨난 거죠.
언젠가는 e메일 등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인터넷 기반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의 과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