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우리나라 가정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대신 찬장이 있었는데, 각종 반찬을 실온에 보관하는 중요한 부엌 가구였다. 세월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부잣집부터 현대의 아이스박스 같은 형태의 ‘얼음냉장고’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집집마다 전기 냉장고를 들여놓게 되었다.
찬장에서 냉장고로 대치되면서 질병의 양상도 많이 바뀌게 된다. 찬장에 음식을 보관하던 시대에 창궐하던 수인성 전염병과 소화기 계통의 대표적 질환인 ‘배탈’이 많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수인성 전염병에는 콜레라, 장티푸스 및 대장균성 장염도 포함된다. 현대에는 장티푸스와 콜레라의 치료법도 많이 발전하여, 이런 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치사율 역시 많이 떨어졌다. 새로운 음식 저장법이 이처럼 큰 효과를 보자 찬장에 식품을 저장하는 기존의 방법을 쓰는 곳은 현재 거의 없다.
21세기 의료에서도 의료의 기본적인 분야는 같다. 진단, 치료, 예방 및 재활의 네 가지 분야가 근간을 이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양한 맞춤형 치료, 유전자 체질 분석 등 의료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 그 중 각광받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 중 하나가 예방 의학 분야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전염병은 사라질 것이고, 암과 퇴행성 질환이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병들은 발견될 때면 이미 병이 많이 퍼져있는 경우도 많다. 즉 발병위험이 예측되는 사람이라면 미리 부터 예방교육을 시켜 주며 발병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 의학으로도 유감스럽게 모든 병을 다 예방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미 발병된 병을 조기에 찾아내야 하는 ‘진단기술’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첨단기술 발전해도 해부, 병리 중요성 오히려 높아져
현대의 진단기술은 크게 X선 등 장비를 사용하는 방사선학, 그리고 임상과 해부로 구분할 수 있는 ‘병리학’으로 나뉜다.
방사선학은 진단, 검사과정에서 70년대의 냉장고와 같은 첨단 진료방법일 것이다. X선, 초음파, 혈관조영촬영,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비(MRI) 등을 통해 환자의 몸속을 확인하고 검사하는 방법이다.
임상병리학적 진단에는 혈액학적, 생화학적, 면역혈청학적, 미생물학적 진단에 필요한 장비와 지식을 활용해 병을 확정하는 방법이며, 해부학적 방법은 환자의 세포나 조직을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검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도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병리학적 진단은 과거의 찬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 진단 영역에서 만큼은 찬장이 냉장고 보다 못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첨단 의료장비가 나날이 발전하고, 사람의 몸속을 칼을 들어 열지 않고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병리학의 필요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
사람들의 생활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냉장고가 보편화된 지금은 수인성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병의 진단과 치료, 예방 및 재활의 방법도 시대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현대의학에서 시민들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건강유지 상식을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적인 검사와 첨단 검사방법을 적절히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환자 스스로도 각종 진단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질병의 예방과 조기발견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신형식 한림의대 병리학 교수·강동성심병원 병리과장·수필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