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리치사이언스]막장 드라마, 막장 과학

  • 입력 2009년 2월 12일 15시 18분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주인공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주인공들.
포르투갈 의사 안토니오 모니즈는 정신병 환자에게 뇌의 일부 부위를 절단하는 수술을 처음 실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수술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의사 안토니오 모니즈는 정신병 환자에게 뇌의 일부 부위를 절단하는 수술을 처음 실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수술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대표적으로 탤런트 장서희가 나오는 ‘아내의 유혹’이 있죠. 그러고 보면 장서희는 착한 드라마보다 욕을 먹는 드라마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아내의 유혹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두어 번 채널을 돌리다가 슬쩍 본 게 전부죠.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입니다. 이 드라마도 욕을 먹는 부분이 있지만요.

사실 아내의 유혹을 보면 억지스러운 설정이 거슬리곤 합니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헤어스타일 바꿨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 아내를 몰라볼 수 있을까, 그런 아내에게 다시 빠져드는 게 정상인가 하는 것들이죠. 더구나 왜 이리 요즘은 친구의 남편을 잘도 유혹하는지요. 청소년시절 봤던 외국 드라마 ‘에덴으로 돌아오다’의 설정과 비슷하기도 하고요.

전 그래도 막장 드라마를 무조건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막장 드라마는 갈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요. 막장 드라마는 잘 만든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예술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B급 영화에도 생생한 삶이 있는 법이니까요.

최근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세상을 바꾼 10가지 심리학 실험을 깊이있게 보여주는데요, 마지막 실험이 ‘드릴로 뇌를 뚫는’ 실험입니다. 뇌에 구멍을 뚫어 무언가를 잘라 정신병을 치료하는 거죠. 이 수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포르투갈 의사 안토니오 에가스 모니즈는 194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 과학 분야에선 이 실험은 그야말로 ‘막장 실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잘못된 노벨상 3위 안에 오르는 사례이기도 하고요(하나는 ‘기생충이 암을 일으킨다’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기억이 나질 않네요).

지난해 한 교수님과 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참 그 과학자를 비난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신병을 치료하겠다고 뇌를 자르다니, 얼마나 부작용이 큰지 모르고. 수술을 받았던 사람 중에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책의 저자는 신기하게도 모니즈 박사에 대해 의외로 호의적인 감정을 보여줘 깜짝 놀랐습니다. 수술 방법이 너무 과격해 보여서 그렇지 사실은 분명히 치료 효과가 있다는 거지요(학계에선 여전히 반대가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엄격한 조건을 갖춰 이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책에 나온 한 환자는 젊었을 때부터 생겼던 심한 강박증이 수술 뒤 사라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뇌 수술을 굉장히 정교하게 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 수술을 받을 정도라면 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지요.

물론 모니즈 박사는 지금 관점에서 충분한 정보 없이 굉장히 위험한 실험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아직도 이 수술이 (물론 많이 개선되었겠지만)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뇌의 특정 연결 부위를 잘라 정신병을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예전에 막장 과학으로 알았던 기술이 엄연히 생존해 있고,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요(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꽃이 필 막장 과학은 지금 없을까요?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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