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기자의 digi談]공익 외면하는 지상파TV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공익 외면하는 지상파TV

미디어 산업 발목 잡는다

“와! 와! 와!”

지난해 8월 22일 오후 2시경,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에서 이승엽 선수의 8회 말 역전 홈런이 터졌습니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사무실 곳곳에선 1, 2초 남짓한 간격으로 세 번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 함성의 시간차가 생겨났을까요.

저마다 다른 미디어로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상파 방송으로 본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함성을 질렀고 전송시간이 조금 느린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나 인터넷 방송(웹 TV)을 보던 이들은 뒤늦게 환호했던 것입니다.

오직 지상파 방송만 존재했던 과거에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걸 보면 미디어 간 경쟁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국민적 관심사인 스포츠 경기는 콘텐츠로 판가름 나는 미디어 간 경쟁에서 뉴 미디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입니다.

올해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중계료 협상에서도 지상파 방송은 마지막까지 난항을 겪은 반면 ‘위성DMB’(TU미디어)와 ‘모바일TV’(SK텔레콤), ‘인터넷 방송’(엠군)은 일찌감치 협상을 마치고 생방송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나만의 킬러 콘텐츠를 확보해 미디어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 다양한 미디어가 경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판도를 바꿀 만큼 강한 파급력을 가진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한국의 미디어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지상파 방송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상식을 깨는 ‘막장 드라마’에서부터 연예인을 동원한 버라이어티쇼, 성(性)적인 암시나 노출이 빈번한 선정적인 프로그램까지 모두 독점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중요한 임무인 사회방송, 교육방송, 국제방송은 외면한 채 말이죠.

이러니 시청자들이 다른 콘텐츠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킬러 콘텐츠’가 등장해 지상파가 지배하는 미디어 시장 구도를 뒤흔드는 일도 생기기 어려운 것이죠. 지금은 공익(公益)도 잃고 시장도 잃는 방송 구조인 셈입니다.

미디어 간의 다양한 경쟁구도가 생겨나야만 콘텐츠 산업도 활성화되고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을까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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