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차량, 장갑차까지 동원되는 어른들의 전쟁게임

  • 입력 2009년 3월 21일 16시 48분


‘빵야’ ‘탕, 탕, 탕’ ‘두두두두’

사내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입으로 총소리내고 리얼하게 몸 던져가며 영화배우 못지않게 총싸움, 전쟁놀이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군대 가서 ‘진짜 총’도 쏠 수 있는 대한민국 남자이기에 군(軍)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더욱 자연스럽다. 국내에서 유독 온라인 슈팅게임이 많이 개발되고 큰 인기를 얻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 이쯤 되면 가상에서 벗어나 진짜 전쟁은 아니더라도 리얼한 실제 전투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국내에선 군용 장비 수집가들을 중심으로 어른들의 전쟁놀이가 시작되고 있다. ‘리인액트먼트 게임(Reenactment Game)'이 그 것.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특정 전쟁, 사건 등을 정해 참가자들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 시대의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한다. ‘리인액트먼트게임(Reenactment Game)’이라 불리는 이 행사는 다시(Re), 역을 연기한다(Enact)는 의미의 역사재현게임이다.


국내 ‘리인액트먼트’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소련의 붉은군대 제 2친위보병사단’, ‘베트남전 해병대 리인액트 팀 청룡’, ‘WWII 연합원정군 역사재현팀’ 등의 동호회가 대표적이다. 재현 참가자를 뜻하는 ‘리인액터’는 전국에 약 5백에서 1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행사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리인액터’는 1백 명 수준이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게임들은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일종의 ‘서바이벌게임’이 주가 됐고 ‘재현’의 비중은 약했다. 하지만 최근 10, 20대 ‘리인액터’를 중심으로 한 ‘리인액트팀’들은 ‘재현’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들은 재현을 캠코더로 찍어 동영상으로 남기는데 이 영상에 컴퓨터그래픽까지 더해 편집하면 꽤 그럴듯한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외에서 ‘리인액트먼트’가 활성화 된 것은 19세기 이후다. 남북전쟁을 치른 미국과 1,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을 중심으로 유명 전투 등을 기념하기위한 지역들의 소규모 축제에서부터 시작됐다. 미국 남북전쟁의 결전장이었던 게티즈버그 전투나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리인액트먼트는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 모일만큼 유명한 축제가 됐다.


‘리인액트먼트’를 단순히 철없는 어른들의 전쟁놀이쯤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역사재현 행사 전체에 스토리가 존재하고 참가자는 배역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여기에 역사적 자료에 기반을 둔 ‘실제 역할극’이기 때문에 행사자체에 의미가 부여된다. 또 전투에서 실제 일어났던 상황과 군대의 전략, 전술, 행동 등을 역사가와 군사장비 수집가들이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을 거쳐 재현하기 때문에 행사 전 참가자들의 역사학습과정도 동반돼야 한다. 많이 아는 만큼 재미있게 재현 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국내 ‘리인액트먼트’에서도 최근 재현에 초점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초창기라고 할 수 있다. 군사잡지 '플래툰'의 김남호씨는 “국내 리인액트먼트’가 거듭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내 ‘리인액트먼트’는 2차 세계대전에 편중돼 있는데 당시 전투장비나 복장의 구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참여인원 자체가 적고 장비 등이 부족하다보니 제대로 된 재현이 쉽지 않다. 해외의 경우 허가를 받은 개인총기에 공포탄을 넣고 실제와 거의 흡사한 전투장면을 재현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가격이 비싸고 운송의 어려움이 있는 군용차,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의 장비까지도 동원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총포법’으로 유사총기의 제작자체도 어려운 현실이기에 국내 ‘리인액터’들은 해외의 역사재현 여건과 지원 등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리인액트먼트’를 총싸움으로 오해하는 일반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장이나 숲 속 등의 음지(?)를 찾게 된다.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BB탄 총을 들고 단체로 행동하다보면 수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군과 시민이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군과 관련된 놀이를 부담스러워한다. 군과 관련된 취미활동이 배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군대 애호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동호인들은 말한다. 또한 공개적인 역사재현행사를 통해 단순 마니아들의 놀이가 아니라 긍정적인 모습의 행사로 발전한다면 국내에도 인천상륙작전, 백마고지전투, 낙동강방어선전투의 ‘리인액트먼트’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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