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연구 10년 이끈 ‘KAIST fMRI’ 무용지물 되나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2001년 KAIST에 설치된 연구 전용 fMRI. 성능이 7, 8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어 최근 뇌 연구자들 사이에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2001년 KAIST에 설치된 연구 전용 fMRI. 성능이 7, 8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어 최근 뇌 연구자들 사이에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두엽 찍은 영상 문제점 발견

훼손 데이터 쓴 논문 논란 우려

업그레이드 부족해 잦은 고장

정부 운영비마저 끊겨 한숨만

“뇌의 전두엽 영상을 찍었는데 노이즈가 너무 심해 쓸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이젠 데이터를 믿을 수가 없네요.”

최근 KAIST에 있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장비를 써서 실험한 서울대 심리학과 이상훈 교수는 이처럼 실망감을 털어놨다.

뇌 내부의 생리활동을 촬영하는 fMRI는 뇌과학 분야의 핵심 장비다. 특히 KAIST의 fMRI는 누구나 저렴하게 쓸 수 있어 사실상 국내 뇌 연구를 이끌어왔다. 그랬던 이 장비가 최근 연구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하며 야심 차게 이 장비를 구입한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 핵심 영상 왜곡되는 첨단장비

이마 바로 뒷부분인 전두엽은 기억력과 사고력 등 고등 정신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핵심 영역이다. 이곳을 찍은 영상에 문제가 있다는 건 뇌 연구 장비의 치명적 결함이다.

KAIST의 fMRI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고 많은 뇌 연구자가 지적한다. 올 1월 KAIST의 fMRI로 뇌 영상을 촬영한 전남대 심리학과 박태진 교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측두엽 영상도 왜곡돼 나와요. 청각정보처리나 얼굴 인식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영역이죠. 안 되겠다 싶어 fMRI를 보유한 국내 대학병원을 찾아 다시 찍었습니다.”

사실 fMRI가 KAIST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병원 등 웬만한 규모의 병원은 대부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박 교수는 “KAIST에서 6∼8명 촬영하는 비용으로 병원에선 1명밖에 못 찍는다”며 “환자가 없는 주말이나 밤 시간을 이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돈 되는 환자를 놔두고 굳이 연구용으로 많은 시간을 개방할 리 없으므로 연구전용으로는 KAIST의 fMRI가 거의 유일한 셈이다.

급기야 일부 국내 뇌 연구자는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는 올 2월 일본 다마가와대에서 fMRI를 빌려 썼다.

“코 바로 위에 있는 내측 안와전두엽 영역은 KAIST 장비론 영상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요. 의사결정을 다루는 제 연구에 치명적이죠. 일본에선 다행히 깨끗한 영상을 얻었습니다.”

뇌 연구자들은 KAIST에서 fMRI를 처음 써보는 초보 연구자가 만약 훼손된 데이터 그대로 국제학술지나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면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 구입만 하고 운영은 뒷전

KAIST에 연구전용 fMRI가 처음 설치된 건 2001년. 그동안 국내 뇌 연구 영역을 의학뿐 아니라 생물학이나 심리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로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 장비를 관리하고 있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박현욱 교수는 “10년이 다 됐지만 업그레이드가 부족해 성능이 설치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 1년에 두세 번은 고장 난다”며 “나름대로 기술을 보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장비 유지나 업그레이드, 수리 등에 필요한 운영비다. 한 해에 약 3억 원 규모다. 장비의 핵심 부품인 초전도자석을 운영하려면 온도를 낮추기 위해 액체헬륨이 필요하다. 액체헬륨은 사용할수록 공기 중으로 날아가 없어지기 때문에 제때 채워줘야 한다. 액체헬륨 보충에만 1년에 약 3000만 원이 든다. 박 교수는 “지난해 4월부터 정부에서 지원하는 운영비가 끊어져 다른 연구비에서 그때그때 충당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으론 장비를 지금 수준으로라도 계속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KAIST에 fMRI를 납품한 국내 기업 ‘아이솔테크놀로지’ 이흥규 대표는 “현재 KAIST fMRI의 하드웨어는 영상처리 시간이나 해상도, 데이터 수집 성능 등이 7, 8년 전 수준”이라며 “핵심부품인 스펙트로미터만 교체해도 영상처리 시간이 4분의 1 정도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랏돈으로 구입한 고가의 과학장비가 부실한 사후관리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과학계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뇌가 활동하는 동안 소모되는 산소의 양을 측정해 영상으로 나타내는 장비. 개인별 건강 상태나 기분, 처리할 정보의 종류 등에 따라 뇌 영역마다 산소 소모량이 다르기 때문에 의학이나 심리학, 전자공학 등의 분야에서 뇌질환을 진단하거나 개인별, 뇌 영역별 생리기능을 연구하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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